- 관련 분야 연 2000여 명 배출
- 작가·조명 등 13억 시장 공략
- '할리우드 키드'로 영화 관심
- 인연 이어가며 감독 꿈 키워

"그녀만큼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까요. 20세기 최고의 미인이면서도 불행한 결혼생활, 하지만 그 아픔을 세상을 향해 봉사하는 성숙함으로 보여준 위대한 사람이지요. 많은 분과 오드리 헵번의 기억을 공유하고 싶어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10월 말께 그 경험으로 멀티카페 모니카를 열 계획입니다."

박태호 부산영화·영상산업발전협의회장은 "부산지역에서 연간 2000여 명 배출되는 영화·영상 인력을 지역에서 흡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순용 선임기자

철못 생산 및 케이블 수출업체인 진흥스틸의 박태호 회장은 시대와 장르를 뛰어넘는 영화 이야기로 한 시간 넘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해운대 마린시티에서 왜 오드리 헵번 카페를 운영하게 됐는지, 영화가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달라지게 만들었는지 등 그의 입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영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누구라도 영화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지난 4월 출범한 부산 영화·영상산업발전협의회의 초대 회장을 맡았다. 부산 상공인이 지역 영화·영상산업 발전에 앞장서기 위해 만든 이 협의회는 영화·영상 분야를 산업으로 육성해 지역경제 도약의 주춧돌로 삼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그를 비롯해 명진TSR 조시영 대표, 골든블루 김동욱 대표, 우호건설 우인호 대표, 비케이인베스트먼트 조수현 대표, 더베이101 박지만 대표, 삼진어묵 박용준 이사 등 지역의 젊은 상공인 20여 명이 참여했다.

협의회 측은 지난 6월 중국의 영화기업 완다그룹을 방문해 영화산업투자 부문도 협의했다. 완다그룹은 현재 부산시와 함께 각각 500억 원을 출자해 한중 공동영화 제작에 사용할 1000억 원 규모의 영화펀드 조성을 추진키로 했다.

그는 "중국 영화시장은 최근 3년간 연평균 35%씩 증가하고 있고, 지난해 시장규모는 전년 대비 48.7% 증가한 8조 원에 달한다. 관객도 13억1000만 명으로 한국 영화시장의 6배 규모다. 하루빨리 이 펀드를 중심으로 영화와 관련한 부산의 젊은 인력들을 지원하고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그는 "부산지역 영화·영상 관련 졸업생이 연간 2000명 이상이 배출된다. 부산에서 이 인력들을 흡수해 작가나 조명, 촬영 등 인적 자원으로 키워 거대 중국 시장의 틈새를 노려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부산시와 부산영상위원회, 상공회의소 등의 역할과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경기가 어려운 여건에서 본업은 물론 영화산업까지 열정적으로 뛰어들게 된 계기는 뭘까. 박 회장은 부산 중구 남포동 일대 극장가에서 유년기를 보낸 '할리우드 키드'였다. 그는 "1960년대 얼마나 각박했느냐. 그때 컬러로 된 외화 한 편 보고 나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친구들에게 허풍을 곁들여가며 영화 이야기를 해 주면 모두 제 주변을 빙 둘러서서 얼마나 열심히 듣던지. 공부보다는 그 재미로 학교에 다녔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본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년)는 영화감독의 꿈을 심어 주었다. "바다를 소재로 한 재난영화였는데 그중 압권은 신부 역인 진 핵크먼이었다. '하나님 날 도와주지 않아도 되니 갈 길을 막지 말라'는 한 마디, 모두들 살려 달라 기도할 때 나를 막지 말라는 그 절규가 너무 멋졌다. 저런 영화를 꼭 만들어 보고 싶었다."

가지 못한 길이었기에 더 애착이 남았다. 박 회장은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기업을 이끌면서도 영화에 대한 관심을 내려놓지 않았다. 영화감독 배우들과 지속해서 교류한 결과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극비수사' 등을 제작·지원했으며, 곽경택 감독의 영화 '태풍'에서는 해군참모총장으로 특별 출연하기도 했다. 지금도 영화연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지금까지 우리는 보여주는 영화 산업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부산에서 투자하고 인력을 키워서 수익을 창출해야 할 때"라면서 "영화산업은 일종의 벤처투자인 만큼 부산에서 키운 인력이 제대로 놀 수 있는 장을 만드는 데 지역기업들이 십시일반 힘을 보태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