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년 전 대졸 여성 최초 입사
- 남자직원 못잖게 열정적 업무
- 작년 유리천장 깨고 부장 돼
- "ETF 등 개발상품 성장 뿌듯"

"대학 선배가 증권거래소(한국거래소의 전신) 채용공고를 보여주면서 같이 시험을 보자고 권유했어요. 시험 당일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는데 마침 제 자리에 신문이 있었어요. 무료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글을 꼼꼼하게 읽었죠. 그중 통일을 위한 사회적 준비에 대한 사설이 실려 있었는데요, 그날 논문 시험 주제가 바로 '통일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죠. 시험지를 본 순간 '아! 운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운 좋게 붙었어요. (웃음)"

한국거래소 정미영 부장은 "석유 등 일반상품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이용자의 의견을 청취해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서순용 선임기자

한국거래소 정미영(여·51) 파생상품시장본부 일반상품시장부장의 입사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그녀는 거래소 창사 이래 최초의 대졸 여사원이다.

정 부장은 "제가 처음으로 입사한 대졸 여직원이다 보니 조직 내부에서도 어떤 업무를 맡길지 준비가 안 된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회사 내부 규정이 적힌 안내 책자조차 여직원들은 받을 수 없었다. 조직 문화 자체가 여직원은 남자직원을 돕는 보조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남자 동기들이 당연하게 받는 대우들이 그녀에게는 언제나 투쟁의 대상이었다. 정 부장은 "부모님이 건강하게 낳아 주신 덕분에 체력은 자신 있었다. 그 덕분에 너끈하게 야근을 소화할 수 있었고, 기존 여직원들과는 다르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1989년 입사한 정 부장은 지난해 12월 부장으로 승진했다. 현재 한국거래소 직원 가운데 여성부장은 단 두 명에 불과하다. 남자 동기들보다 승진은 다소 늦었지만, 정 부장의 반응은 '쿨'했다.

그녀는 "결혼하기 전까지는 오로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회사에 에너지를 100% 쏟을 순 없었다"고 말했다.

정 부장은 자신만의 원칙을 세웠다. 회사에 있을 땐 일에만 집중하고, 집에 있을 땐 가족만 생각하자는 것. 정 부장은 "아이의 성장단계마다 엄마가 꼭 필요한 순간이 있기 때문에 엄마의 역할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었다"며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면 일에도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직장생활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이다. 길게 보는 안목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모든 직장 여성에게 선배로서 건네는 진심 어린 한마디였다.

현재 그녀는 석유, 금, 배출권 등 일반상품시장을 총괄한다. 석유전자상거래는 2012년 석유제품 시장의 투명성 제고 및 경쟁촉진을 위해 개설됐다. 배출권 시장은 정부가 기업 등에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 허용량을 부여하고, 기업은 허용량 범위 안에서 감축 노력을 기울여 배출권과 부족량을 거래한다. 2014년 문을 연 금 시장의 설립 목적은 국내에서 유통되는 금 시장의 양성화이다.

특히 거래소는 오는 9월 미니 금 상장에 나선다. 금 종목의 인출 단위가 현재는 1㎏인데 미니 금은 100g 단위로 인출할 수 있게 된다. 정 부장은 "졸업과 입학, 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 100g단위의 금이 시중 금은방에서 많이 거래된다"며 "실제 시장에 참여할 공급업자나 투자자들의 미니금 관련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전 부서에서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합성 ETF 상품, ETN 상품 등이 좋은 투자상품으로 자리매김해 날로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매우 뿌듯하다"고 말했다.

정 부장은 전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증권거래소에 입사했다. 이후 카이스트 금융공학 경영학석사 과정을 밟았다. 거래소 조사부, 홍보실, 상장공시부, 조사국제부 등 다양한 보직을 맡았다. 코스닥시장본부 시장마케팅팀장을 거쳐 지난해 12월부터 파생상품시장본부 일반상품시장부장을 맡고 있다.

김미희 기자 maha@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