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후죽순 아트페어에 염증
- 부산영재교육원 앞마당 빌려
- 이동식 갤러리 실험적 시도
- "늘 작품 즐기는 공간 만들 것"

부산의 중견 화가 장경숙(45) 씨는 최근 '갤러리 움직이다'라는 신선한 콘셉트의 전시(본지 지난달 29일 자 21면 보도)를 시작했다. 부산 연제구 부산시영재교육진흥원 앞마당에 가로 1.6m, 세로 1.6m, 높이 2m의 컨테이너 갤러리를 설치하고, 한 달에 한 작품씩 모두 12개 작품을 1년간 선보이는 프로젝트다.

장경숙 작가는 "이미도 번역가가 'For Your Eyes Only'라는 갤러리 이름을 지어줬다"며 "주변의 아이디어가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서순용 선임기자

공간의 이름은 'For Your Eyes Only'(당신만 보셔야 함(函)). 제목처럼 컨테이너 갤러리 안에 걸린 작품은 한 번에 단 한 사람만 감상할 수 있다. 갤러리 안에는 들어갈 수 없고, 밖에 난 자그마한 유리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장 작가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아트페어에 대한 대안으로 실험적인 전시공간을 고안했다"고 말했다. "1990년대 말부터 전국에 수많은 아트페어가 생겼어요. 사람들은 갤러리를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한자리에서 다양한 그림을 볼 수 있는 아트페어에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작품을 제대로 보고 즐기기 어려워지고 있어요. 아트페어가 '팔리는' 작품으로 채워지다 보니 유사한 그림들만 걸리기 시작했어요. 판매가 목적이다 보니 디스플레이도 작품에 집중하도록 하기 어려웠죠. 좋은 작품을 즐길 수 있는 멋진 공간이 사라지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기회도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갤러리나 아트페어 전시장이 아닌 길거리 컨테이너에서 전시회를 열겠다는 계획을 말하자 미술계 지인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작품의 질까지 떨어져 보일 수 있다"는 우려였다. 하지만 미술계 바깥의 지인들은 "재미있는 아이디어"라며 그를 격려했다. 장 작가의 기본 콘셉트에 더 좋은 아이디어를 더해주기도 했다.

"외화번역가 이미도 선생님이 'For Your Eyes Only'라는 갤러리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갤러리 외부에 붙인 조지 버나드 쇼의 명언(You use a glass mirror to see your face; you use works of art to see your soul : 거울은 당신의 외모를 비춥니다. 예술작품은 당신의 영혼을 비춥니다)도 알려주셨어요. 또 갤러리 콘셉트와 작품에 대한 설명을 적은 블로그 주소를 일일이 나열하려고 하자 제자가 'QR코드' 아이디어를 주었죠. 조갑룡 영재교육진흥원장님이 기획의도를 듣고 흔쾌히 앞마당을 내어주셨습니다. 다른 분야와 협업하면 생각지도 못한 멋진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는 움직이는 갤러리의 큰 장점으로 "언제나 작품을 관람객에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꼽았다. 장 작가는 "1년 내내 그림을 그려 관람객에게 선보일 수 있는 기간은 전시회를 여는 1, 2주에 불과하다. 전시 이후 작품은 '창고행'이다. 작가와 관람객 양쪽 모두 손해다. 작가는 작품을 더욱 자주 노출하고, 대중은 작품을 쉽게 즐길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장 작가는 그의 새로운 시도가 "후배 작가들에게 용기를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끔 후배나 제자들이 어떻게 하면 아트페어에 참여할 수 있냐고 물어요. 솔직히 뾰족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에요. 또 아트페어가 답도 아닙니다. 자칫 '팔리는' 작품에 집중하다 마라톤 같은 화가 인생을 길게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공간이 우리의 갤러리이고 전시 공간임을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장 작가는 동아대 대학원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현재 동명대에 출강하고 있다. 박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