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무원·경찰 동원 원생 모아
- 남녀노소 불문 강제 노역"
- 12년 동안 최소 513명 사망
- 대통령, 변호사 때 조사 참여
- 특별법 통과 목소리 높아져

국내 최대 인권유린 사건으로 불리는 부산 사상구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지 올해로 30년째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 등을 위한 특별법이 발의됐다가 폐기되자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재발의했다. 최근 '형제복지원 특별법' 통과를 촉구하는 8000여 명의 서명지가 국회에 전달(본지 지난 3일 자 9면 보도)되면서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 손정민 씨는 10일 "이번 정부에서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통과돼 사건의 진상규명 등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종진 기자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 손정민(48) 씨를 10일 만났다. 1981년 당시 12살 어린이가 형제복지원에서 겪어야 했던 끔찍한 폭력은 36년이 지난 지금도 손 씨를 괴롭히고 있다. 손 씨 등 피해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형제복지원 조사에 참여했던 만큼 이번 정부에서 특별법이 통과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형제복지원은 권력과 결탁해 만들어진 지옥도였다"고 단언했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손 씨는 부모가 이혼하자 아버지와 살았다. 아버지의 재혼 후 자신을 구박하는 새엄마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손 씨는 무작정 부산으로 왔다. 친척집을 찾아가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부산역 대합실에서 서성이던 그를 인근 중부경찰서 경찰이 데려갔다. 영문도 모른 채 경찰서에 간 손 씨는 2시간 만에 부산시청 사회복지과로 보내졌고, 잠시 뒤 형제복지원 직원들에게 끌려갔다. 손 씨는 "그때 경찰이 집이 어딘지, 부모님이 계신지 묻고 연락만 해 줬어도 그곳에서 끔찍한 일은 겪지 않았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자정이 다 돼 도착한 형제복지원의 첫인상은 감옥 같았다. 그는 "산비탈에 세워진 시설까지 기어가듯 올라갔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높은 철문과 담벼락을 보니 어린 내가 생각해도 다시는 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고 몸서리쳤다.

81-2623번, 형제복지원에서 받은 번호다. 그는 "함께 잡혀 온 어른들이 저항하니 형제원 사람들이 각목으로 때렸다. 다 같이 정신을 못 차릴 만큼 맞은 뒤 숫자판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 숫자는 죽을 때까지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생들은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 원훈 등을 외우고, 못 외우면 다시 맞기를 반복했다.

손 씨의 입소 당시 형제복지원은 늘어난 수용자 때문에 건물을 증축하던 시기였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그는 40㎏짜리 쌀 포대에 흙을 가득 집어넣어 등짐처럼 지고 가파른 길을 오르내렸다. 포대를 쥔 손에서 핏물이 떨어졌다. "살기보단 죽고 싶던 나날이었다." 손 씨가 신음처럼 내뱉었다.

손 씨는 5년여 만에 형제복지원을 나왔다. 원생들이 입소 직후 쓴 편지를 복지원 측에서 부정기적으로 보냈고, 그 편지를 손씨의 할아버지가 받게 되면서 풀려났기 때문이다.

손 씨는 "내가 실종되자 아버지가 전국의 보육원을 다 찾아다녔다고 했다. 형제복지원은 보육원이 아닌 부랑인 수용시설이었기 때문에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찾다가 3년 만에 객사했다.

손 씨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5년 내무부 훈령 410호에 근거해 복지원이 만들어졌다. 원생을 모을 때 공무원과 경찰이 동원된 사실도 명백하다"며 "내 유년시절을 빼앗아간 사실에 대해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도 받고 싶고, 강제 노역에 동원된 보상도 받고 싶다. 이대로는 죽어도 눈을 못 감을 것 같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1987년 신한민국당(신민당)의 형제복지원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75년부터 12년 동안 이곳에서 최소 513명이 사망했다. 김봉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