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해양대·항해사 출신
- 영국 유학 가 변호사 자격 따
- “해양 관련 취업 준비 청년들
- 승선직에 너무 얽매지 말고
- 다양한 분야로 눈 돌려야”

지난 2월 대한민국 최대의 해운회사인 한진해운이 법원 파산선고를 받고 창립 40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여파는 청년 취업에 영향을 미쳐 해양 분야 신규 종사자 수가 줄고, 급기야 일부 해양대에서는 신입생 감축을 논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정 산업의 위축이 관련 분야 진출을 꿈꾸던 청년의 미래까지 뒤흔든 셈이다. 이런 시기에 최근 젊은 해양학도들에게 귀감이 되는 한국해양대 졸업자가 있다. 그 주인공은 김경화(51) 스티븐슨하우드 서울사무소 대표변호사. 스티븐슨하우드는 해사 중재 전문 로펌으로, 런던 등 전 세계 9개 도시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김경화 스티븐슨하우드 서울사무소 대표는 “해사 분야에서는 영국법이 준거법”이라며 “해양대 졸업생들이 관련 분야에 관심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 변호사는 1989년 한국해양대 항해학과를 졸업하고 한진해운에서 3년간 항해사로 의무복무한 뒤 영국으로 건너가 1996년부터 현지 변호사로서 국제 선박 용선·건조, 해양 보험·금융 분야의 계약·분쟁 소송을 맡아온 전문가다. 그는 2013년 변호사 평가 기관인 톰슨 로이터로부터 슈퍼 로이어로 선정됐으며, 2015년 영국 법률 전문지 채임버스 아시아 퍼시픽이 뽑은 국제 해운 기업 부문 우수 변호사, 해운업체 로이드가 정하는 해운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기도 했다.

19일 김 변호사는 2014년 3월부터 설립 대표로 일해온 스티븐슨하우드 서울 사무소에서 “전 세계적으로 해운, 해양 플랜트·시추 산업이 위축된 상황”이라면서도 “이런 시기일수록 눈을 더 크게 뜨고 멀리 보면 청년들이 진출할 분야가 많다”고 강조했다.

앞서 그는 지난달 모교에 5000만 원의 발전기금을 후원하며 후배들에게 ‘영감과 포부’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당시 김 변호사는 경기 악화 등 대외적 어려움이 있지만, 해양대생은 특수 분야에 속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노력하면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학생들을 격려했다. 이날 그가 강조한 내용은 ‘좀 더 넓게, 남이 가지 않는 길을 보자’였다. “1등급 해운사보다 규모가 적은 업체들은 해기사가 필요하지만, 임금이 적어서 외국인 2·3항사를 채용한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이런 곳에서 경력을 쌓으며 좀 더 넓은 해외 무대로 진출할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죠.”

김 변호사 역시 또래 항해학과 출신들과 다른 길을 모색했다. 대학 졸업 이후 해운업체 의무 복무를 거친 뒤 바로 해운업의 본고장인 런던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해상·보험·선박·금융의 중심지인 런던에서 일하고 싶었다. 학창시절 영어 등을 꾸준히 준비한 덕분에 1992년 2월 하선하자마자 같은 해 9월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처음엔 해운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세계 해운기업의 방식을 배워 국내 해운산업에 일조하고 싶었다”며 “해상법 과목을 공부하면서 법이 적성에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석사 과정을 마치자마자 법대 학부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고 덧붙였다. 보다 넓은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뛰어들었는데, 뜻하지 않았던 계기로 새로운 분야에 진출할 또 다른 길이 열린 것이다.

김 변호사가 영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당시와 마찬가지로 현재 한국인 출신 영국 변호사는 20명이 채 안 된다. 이 중 해사법 전문가는 10명 이하라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국제 선박 용선·건조와 선하증권 계약의 준거법이 되는 게 영국법이다. 일례로 국내 해운사가 그리스 선주와 용선 계약을 체결하면 그 준거법의 90% 이상이 영국법이다. 그만큼 국내 학생들이 영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면 해양 관련 분쟁 분야에서 활약해 성과를 낼 기회가 많다는 이야기다. 김 변호사는 “요즘처럼 해양 시추선, 선박 건조·용선, 플랜트 등 건설 계약이 많지 않은 시기에는 계약 당사자 간에 비용 절감을 위해 기존 규정을 까다롭게 적용하려 한다. 시장이 활성화하지 않을수록 기존 계약 관련 분쟁이 많은데, 그때 우리같은 전문가가 활약한다”고 말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르웨이 석유 시추업체 송가오프쇼어와 김 변호사가 대리인인 대우조선해양이 2년가량 계속하고 있는 공정 지연 관련 소송이다. 그는 “런던해사중재협회에서 중재 중인 사건이라 구체적으로 상황을 말할 수는 없지만, 원유가가 비싸 시추선 수주가 많던 시절 국내 조선업체끼리 경쟁이 치열해 발주업체의 독소조항을 그대로 받아들인 게 오늘날 화살로 돌아온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김 변호사는 최소 3억, 4억 달러짜리 배상이 걸린 소송을 주로 취급한다.

그는 “국내 업체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 자체가 국내 해운 조선 해양 산업의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 젊은이들도 자신이 하루하루 보람을 갖고 매진할 수 있는 일을 꿈으로 삼아 계획을 잡고, 과감하게 실행하면 좋겠다”며 “국내 해양 관련 대학은 승선직 전문가 교육도 좋지만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인재 양성에도 힘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이승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