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차운행 28년10개월 만에
- 지구 22바퀴 사고없이 돈 셈
- “밤낮 가리지 않는 운행시간
- 외롭고 힘들지만 보람차
- 가족과 보낸시간 적어 미안”

“100만 ㎞ 무사고를 달성했을 때 아내가 울었어요.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자랑스러웠습니다.”

최근 100만㎞ 무사고 운전을 달성한 코레일 부산경남본부 고용준 기관사. 서순용 선임기자 seosy@kookje.co.kr

코레일 부산경남본부 부산기관차승무사업소 고용준(55) 기관사는 지난달 27일 기관사로서 대기록을 세웠다. 오전 11시20분, 제1201 무궁화 열차로 부산역에 도착하며 100만 ㎞ 무사고 운행을 달성했다.

100만 ㎞는 지구를 무려 22바퀴 돌고 서울과 부산을 1250번 왕복해야 하는 거리다. 그만큼 값진 업적이다. 그에게 철도기관사는 어떤 의미일까. 최근 부산기관차승무사업소에서 그를 만났다.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사고를 내지 않은 것이니 뿌듯하고 가슴 벅찬 기분이 많이 들죠. 모두 동료들이 도와준 덕입니다.”

그의 말처럼 100만 ㎞ 달성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철도 역사에서 100만 ㎞ 달성자는 고 기관사가 70번째이다. 현재 부산기관차승무사업소에 193명의 기관사가 있지만 이 중 단 7명만이 100만 ㎞를 달성했다. 1988년 8월 첫 운행을 시작한 뒤 28년10개월 만의 일이다. 그는 지금도 KTX열차를 제외한 모든 열차를 운행하며 무사고 기록을 늘려가는 중이다.

고 기관사는 “수백 명의 승객을 태우고 매일 안전하게 종착지까지 모셔다 드릴 수 있어 행복하다”며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소중한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 같아 더욱 열의가 생긴다”고 말했다.

무사고 기록이 마냥 쉬웠던 것은 아니다. 1996년 고 기관사가 몰던 무궁화호 열차가 동해남부선 수영~동래역을 운행하며 곡선 구간을 돌던 중 선로에 멈춰 있던 컨테이너 열차에 부딪혔다. 곡선 정도가 심해 불과 30ｍ 전에 컨테이너 열차를 발견한 고 기관사는 급히 비상제동 장치를 당겼지만 사고를 피할 순 없었다. 당시 사고로 승객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는 “곡선을 돌며 컨테이너 열차를 발견했는데 뒤로 갈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급한 대로 부기관사를 객실로 거의 던지다시피하고 난 머리를 붙잡고 바닥에 엎드렸었다”며 “다행히 대형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아찔했다. 기관사 과실로 인한 사고가 아니었기에 무사고 운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철도 기관사를 천직으로 믿지만 힘든 점도 많다. 교대 근무이다 보니 주말이나 명절 때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침, 밤, 새벽을 가리지 않는 운행시간도 결코 편한 것은 아니다.

고 기관사는 “새벽에 혼자 깜깜한 밤길을 달리다 보면 ‘참 외로운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적으니 더욱 그렇다”며 “100만 ㎞ 무사고를 달성했을 때 아내가 고생했다며 울더라. 그때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퇴직이 이제 약 4년 남은 그는 후배들에게 꼭 100만 ㎞ 무사고 기록을 도전해볼 것을 권유했다. 그것이 코레일과 자신의 긍지를 세우는 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고 기관사는 “100만 ㎞ 무사고는 외롭고 힘든 시간을 이겨낸 훈장과도 같은 것”이라며 “기관사 제복을 벗는 순간까지 무사고 기록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철도 기관사는 수백 명의 생명을 책임지는 직업이라 손님들을 종착지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렸을 때 가장 보람이 크다”며 “어찌 보면 외롭지만 인간의 의무를 지고 끝까지 먼 길을 달려가야 한다는 점에서 기관차 운행은 우리 인생과도 많이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준영 기자 lj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