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영상미디어센터 틀 벗고
- 융합·실험 다큐 중심 연구로
- 6년간 정부 예산 15억 확보
- 단편 성과 대신 본질에 집중
- 고등연구기관으로 거듭날 것

“저희 연구소는 영화학 연구의 토대를 다지려고 합니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기보다는 영화가 무엇인지, 영화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등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갈 계획입니다. 특히 대학이 일종의 직업학교처럼 변질돼 가는 현실에서 영화 교육과 영화 연구에서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동의대 영화·트랜스미디어연구소 김이석 소장은 “새 연구소에는 지역 연구진을 비롯해 해외 실험영화 감독까지 대거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서정빈 기자

동의대 영화·트랜스미디어연구소 소장 김이석(49·영화학과) 교수는 이렇게 계획을 밝혔다. 김 소장은 원래 동의대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지난 9월 이름을 바꾼 ‘영화·트랜스미디어연구소’의 책임연구자이자 소장을 맡았다. 이 연구소는 최근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2017 인문사회 분야 대학 중점연구소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앞으로 6년 동안 15억 원가량의 지원금(한국연구재단, 동의대 등)을 받게됐는데, 이는 인문·예술 분야에서는 매우 큰 사업비 규모로 장기적이고 안정된 연구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뜻깊은 기회다. 지원의 방향은 해당 학문 분야의 연구 거점을 육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화·트랜스미디어연구소가 과제로 선정한 주제는 ‘트랜스미디어’와 ‘포스트 다큐멘터리’. 아직 낯선 ‘트랜스미디어’ 개념은 ‘융합 매체’를 뜻한다. 매체 환경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새로운 영상콘텐츠와 매체 환경 전반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모바일이나 태블릿 PC 같은 개인용 미디어 플랫폼이 확산하며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가 계속 나오는 현상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다큐멘터리 연구 역시 연장선에 있다. 당대 변화를 빠르게 반영하고 진화하는 다큐멘터리는 장르를 반영한다.

김 소장은 “영화는 다큐멘터리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우리 연구는 장르 연구가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연구”라며 “다큐멘터리는 매체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왔다. 우리 연구소는 고전적인 다큐멘터리 말고도 새로운 유형의 실험적 다큐멘터리 연구도 병행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영화학 연구는 장편극영화에 편중돼 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대학연구소가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무빙이미지 등 대안적 영화미학에 대한 연구 중심으로 기능한다. 우리 연구소도 한국 영화의 미학적 스펙트럼 확장에 기여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으로는 지역 영화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김 소장을 비롯해 허은희, 차민철 교수, 영화평론가 강소원 박사, 홍영주 부산국제단편영화제 프로그래머 등 공동연구원 10명, 전임연구원 2명이 합류해 영화이론, 매체철학, 영화연출, 영상공학 등 영화학 전 분야를 포괄한다. 뉴욕과 파리를 무대로 폭넓은 활동을 펼치는 실험영화 감독인 동국대 핍 초도르프 교수는 해외 네트워크 강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김 소장은 연구소가 부산 전체의 영화학 연구 토대를 다지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는 “부산 영화를 지금까지 끌고 온 것은 부산국제영화제(BIFF)와 부산영상위원회였다. 이들의 주요 영역인 축제와 촬영 유치는 가시적 성과가 중요한 분야라 부산 영화의 장기적 전략에는 집중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1990년대 말 부산 영화계 도약에는 지역 신진 영화학자가 큰 역할을 했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신진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단기 성과보다 영화의 본질, 영화의 미래에 집중하면서 지역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거듭 밝혔다. 연구소는 연말까지 준비 작업을 마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김 소장은 연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파리8대학에서 영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부터 동의대 영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부산영화평론가협회장을 맡고 있다.

안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