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상작은 김해의 전원주택
- 베이비부머 로망 담은 촌집
- “10번 미팅·60회 감리 등
- 오랜 시간 품 들인 성과”

팍팍한 도시생활에 지친 현대인이라면 한 번쯤 마당이 딸린 전원주택에서 안락한 노후생활을 꿈꿔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입버릇처럼 감나무 배나무 등 과실수를 심고 텃밭도 가꾸고 싶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행복한 상상도 잠시, 상당수의 사람은 잘 정돈된 정원과 그림 같은 전원생활은 영화나 사진에서나 가능하다며 비슷비슷한 아파트로 발길을 돌린다.

이기철 대표는 “건축사는 돈을 많이 벌기보다는 좋은 건축에 대한 가치를 알아주는 고객을 만났을 때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곽재훈 전문기자

이기철(40) 아키텍케이 건축사무소 대표는 이처럼 집에 대한 철학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 ‘멋진 집’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 주고 있다. 최근 그는 자신이 설계한 ‘멋진 할아버지 집’으로 2017 대한민국 신진건축사대상 최우수상(국토교통부장관상)과 제12회 한국농촌건축대전 준공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토교통부가 건축인재 발굴과 육성을 위해 시행하는 신진건축사대상은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한 만 45세 이하 젊은 건축사가 설계한 작품 중 준공된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완성도와 창의성, 건축주 및 시공자와의 소통 능력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동아대 건축공학과 96학번으로, 현재 모교에서 후배들에게 건축디자인 및 설계를 가르치고 있는 이 대표는 “하면 할수록 건축이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번 수상을 통해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따뜻한 격려와 위안을 받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수상작은 경남 김해시 상동면에 자리 잡은 지하 1층, 지상 1층의 단독주택으로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한 전원주택이다. 이 대표는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이 없는 집은 폭력에 가깝다”며 “‘베이비부머 세대의 정체성 찾기’와 ‘한국 토속건축의 현대화 과정 밟기’라는 두 가지 주제를 담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현재 55~65세인 베이비부머들은 386세대, X세대 등 자기 세대의 키워드가 따로 없이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로 이주한 사람이 많다. 해당 건물의 건축주는 은퇴 후 불편하지 않은 시골 촌집을 원했다”며 “새마을운동 등을 거치면서 한옥 외에 모두 사라진 우리의 촌집을 되살리면서 현대적 의미를 담는 것이 건축사적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에 설계를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먼저 안채와 별채를 적당한 거리로 나눠 긴 지붕 아래 하나로 연결시켰다. 들쳐진 처마와 툇마루를 살리고 별채에는 한지 창호를 사용해 전통적인 느낌을 강조하면서 건물 외장재로 콘크리트와 대나무를 혼용해 토속과 현대를 조화시켰다. 두 대회 심사위원들은 수상작이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절제된 디자인, 시공자와의 소통을 통한 섬세한 시공, 대나무로 만든 새로운 자재를 활용한 입면(정면이나 측면에서 수평으로 본 모양)이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좋은 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10여 번의 미팅과 60회가 넘는 감리 등을 거쳐야 한다. 집 주인이 원하는 공간, 삶의 경험, 주변과의 관계 등이 건물에 잘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는 오랜시간 품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의 집은 사는 사람의 철학과 삶을 담기보다는 부동산적인 가치로 재단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한 그는 후배들을 향한 격려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건축사는 돈을 많이 벌기보다는 좋은 건축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 주는 고객과 만났을 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보람을 느낍니다. 지금 취업이나 수상과 같이 눈에 보이는 결과도 중요하겠지만, 노력하고 애쓰는 순간순간이 충분한 의미가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한 걸음씩 충실히 밟아가길 바랍니다.”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