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서들의 거친 숨소리와 빠른 발놀림이 이어지는 사각의 링. 복싱 심판은 그 한가운데에서 선수만큼 땀을 많이 흘린다. 김치화(50) 부산 사하경찰서 하단지구대 경위는 근무를 마치면 깔끔한 심판 복장을 차려입고 체육관으로 향한다.

14일 사하구 장림동 칸복싱짐에서 만난 김 경위의 또 다른 직함은 대한복싱협회 심판위원이다. 김 경위는 2008년 부산복싱협회 심판으로 입문해 2014년 대한복싱협회 소속 심판이 됐다. 지난 7월 주심 시험을 통과한 그는 지난달 열린 제98회 전국체전에서 복싱 심판위원으로 활약했다. 국가대표 출신 함상명(용인대) 오연지(인천시청) 선수의 경기가 특히 인상 깊었다고 한다. “경찰 업무로 바쁘지만 연차를 내고 다녀왔어요. 부산 출신 현직 경찰로는 1호 심판위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김 경위는 학창시절 6년간 복서를 꿈꿨다. “부산 출신으로 이름을 날린 박창희·장정구 같은 복싱 세계 챔피언을 꿈꿨습니다. 챔피언에 오르기까지 온갖 고난을 이겨내는 복싱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광성공고(현 경성전자공고) 복싱부 소속으로 뛴 김 경위는 부산지역 대회를 제패하고도 전국 대회에서는 성적을 내지 못해 아쉽게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의무경찰로 입대한 그는 3년간의 복무 기간 보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1989년 무도경찰 특채에 응시해 합격했다. 경찰 제복을 입은 지가 올해로 28년째다. 그는 복싱을 경찰 업무에도 적용해 ‘안전드림’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3년째 진행 중이다. 다송중학교에서 개설한 복싱 교실을 통해 전국체전 부산 대표를 배출하기도 했다. 유도 2단이기도 한 김 경위는 “유도를 활용한 근접전과 복싱에서 배운 타격을 모두 사용할 수 있어 범인을 검거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김 경위가 대중에게 알려진 건 유명인의 사인을 다수 보유한 ‘사인맨’으로 방송에 소개되면서부터였다. 그는 스포츠선수뿐 아니라 정치인·연예인까지 통틀어 1만5000여 장의 사인을 보유하고 있다. 2013년 한 프로그램을 통해 김 경위의 사연이 알려지자 최근에는 사인을 받기도 수월해졌다. “알아보는 분이 많아져 사인도 잘 해줍니다. 사인받으려고 줄 서 있으면 먼저 받으라고 양보해주시는 분들도 계시죠.” 

그는 프로레슬러 천규덕의 사인을 가장 기억에 남는 사인으로 꼽았다. 1973년 그가 최초로 받은 사인이기 때문이다. 김 경위의 꿈은 그동안 받은 사인을 모아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이때까지 받은 자료들을 정리해보는 의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경매를 통해 수익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김 경위는 바쁜 일상에도 일주일에 세 번씩 체육관을 찾아 스파링 경기 심판을 본다. “심판도 실수하지 않도록 연습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김 경위는 복싱 심판뿐 아니라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부산·경남 홍보대사이다. 수시로 헌혈도 한다. 1년간 봉사시간만 200시간이 넘는다. 그는 운동하는 후배 선수들에 대해 애잔함도 드러냈다. “열심히 했는데 패하고 아쉬워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저도 선수 생활을 해봤지만 성실함과 노력은 꼭 좋은 결과로 돌아올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배지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