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년소녀 가장·장애우들에
- 월급 쪼개 장학금·식사대접
- 내일 사직서 작은음악회 개최
- 수익금으론 아이들 도와야죠

“봉사는 나의 운명”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25년 전 같은 버스를 타고 있던 뇌병변 장애인을 도운 뒤 그동안 답보 상태였던 회사 업무가 거짓말처럼 풀렸다. 그 순간, 작은 도움에 환한 미소로 보답하던 장애인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 한편이 뜨거워지면서 ‘봉사를 하니 모든 것이 잘되는구나’를 깨달았다. 그렇게 ‘봉사’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부산지방경찰청 이득찬 행정관은 “18일 사직체육관에서 열리는 소년·소녀가장돕기 10주년 음악회에 많은 분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순용 선임기자

18일 부산 사직체육관 보조경기장에서 소년·소녀 가장 돕기 작은음악회 10주년 기념 행사인 ‘어머니의 마음으로’를 개최하는 이득찬 부산지방경찰청 행정관(48). 소년소녀 가장과 장애인 후원인 부산시민 등 600여 명을 초청해 공연을 하고, 10명의 소년소녀가장에게 100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공연 기획과 체육관 대관, 출연진 섭외, 무대 장비 설치, 티켓 판매 등을 혼자서 도맡다 보니, 이맘때만 되면 몸이 3, 4개는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가족의 도움도 크다. 관객들이 먹을 돈가스 500여 개는 아내가 직접 튀겨서 공연장으로 공수하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두 아들도 와 음식 만들기와 좌석 세팅, 서빙 등을 돕는다.

10주년 공연을 막바지 점검하느라 한창인 그를 최근 부산경찰청에서 만났다. “보통 400여 명을 모시는데, 올해는 10주년이어서 좀 더 욕심을 냈습니다. 얼마나 와 주실지 몰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습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는 “직장일을 하면서 가외로 해야 하니 보통 준비 기간만 8개월 걸린다. 그래도 저의 진정성을 믿고 도와주시는 많은 분 덕분에 지금까지 해 오고 있다”고 감사를 전했다.

음악회 개최가 아니라도 늘 바쁘다. 주말마다 후원하고 있는 소년소녀 가장 7명(초등생, 중고생, 장애인 등)을 번갈아 가며 만나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한다. 남학생들과는 새벽에 배드민턴을 치고 함께 목욕하는 것이 일상이다.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행방불명이 된 가출한 어머니 등 상처가 많은 아이들이기에 항상 조심스럽다. “아이들이 다른 사람과 함께 만나는 걸 싫어해 1 대 1로 봅니다. 1, 2년은 꾸준히 만나면서 친분을 쌓아야 해요. 섣불리 가르치려 하면 금세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이렇게 지난 25년간 수십 명의 아들, 딸을 보살폈다. 매월 일정액의 장학금 지급과 식사비 등으로 수십만 원씩이 급여통장에서 빠져나간다.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게 된 건 어머니의 가르침 때문이다. “40대에 아버지가 투병하시면서 생선 장사로 6남매를 키운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자식들에게 ‘어렵게 살더라도 남에게 베풀고 살아라’고 말씀하셨죠.” 버스에서 만난 장애인과의 인연으로 차량 운전, 목욕 도우미 등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하다 차츰 아이들을 후원하면서 보람이 컸지만 세월이 쌓이면서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의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공연 기획. 이 행정관은 “공연 수익이 나면 아이들을 더 오래, 더 많이 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인은 물론 모르는 사람들에게 후원을 부탁하고 티켓을 팔아야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선수급인 배드민턴 실력을 발휘해 연간 5, 6회 배드민턴 대회도 개최해 후원금에 보탠다. 혼자 하는 봉사지만 후원금 내역서와 영수증 등을 꼼꼼히 정리해 후원자들이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직도 진정한 봉사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그는 “힘들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오는 1급 장애 동생, 음악회 준비에 지친 나를 격려해 주는 소년소녀 가장들, 본인도 어렵지만 봉사에 동참하고 싶다는 지인들에게 힘을 얻는다. 내가 도와주러 가는 게 아니라, 이분들의 따뜻한 마음에 내가 성장하는 것 같아 행복하다”며 봉사의 기쁨을 전했다.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