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고리서 철거된 골매마을 등
- 흑백사진에 고스란히 기록
- 3일까지 40계단문화관 전시
- 탈핵 메시지 전달 계속할 것

“이름은 대상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 때문에 저는 원자력발전소 대신 ‘핵발전소’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영식 작가는 “이름은 대상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소 대신 핵발전소라고 불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순용 선임기자

부산 태생의 장영식(58) 사진작가는 인터뷰 내내 핵발전소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원전이 세계에서 가장 밀집한 나라에서 발전소가 자리한 곳마다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작가. 그의 뚝심과 고집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일관되게 엿볼 수 있었다.

대학에서 종교학과 교육철학을 전공한 그가 전업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1992년부터다. 장 작가는 “정물이나 성당 등 아름다운 풍경을 담으면서 부산 남부민동 아미동 안창마을 등지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분들의 삶과 공간에도 관심을 뒀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사진을 통한 사회참여는 미미했다”고 말했다.

2011년 장 작가는 영도 한진중공업에서 1년 가까이 벌어진 노동자 총파업, 이른바 ‘한진중공업 사태’를 지켜보면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노동의 문제에 대해 전혀 모른 채로 아들과 함께 현장을 방문했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김진숙 위원이 한진중공업 크레인에서 내려올 때까지 현장에 살다시피 하며 사진을 찍었다”고 회상했다.

노동 문제에 관심을 두고 2013년까지 활동을 이어가던 장 작가는 밀양 송전탑 건립에 반대하는 ‘밀양 할매’를 만나면서 환경과 생태, 생존의 문제를 화각에 담기 시작했다. 그는 밀양 할매들의 투쟁기를 기록한 사진으로 2013년과 2014년 사진전을 열었고, ‘밀양아리랑’(2014년)이라는 제목의 사진집도 냈다.

한진중공업 사태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장영식을 있게 한 아버지라면, 밀양 할매들과의 만남은 기록을 이어가게 하는 젖줄이 됐다. 장 작가는 “밀양 할매들은 ‘송전탑은 핵발전소의 자식’이라고 말했다. 2014년 12월 송전선로를 되짚어 차를 달리니 양산과 정관을 지나 맞닥뜨린 게 신고리 핵발전소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는 ‘원전 이주 세대’의 애환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장 작가는 “1969년 11살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골매마을(울산 울주군 서생면)로 오게 된 남성이 있었다. 부모님이 직접 지은 집이 신고리5·6호기 건설 공사로 철거되던 날 ‘사진을 남기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현장 인부가 사진을 찍지 못하게 완강하게 말렸는데, 그 인부는 이 남성의 친구였다”고 말하며 쓰게 웃었다. 담긴 작품이 모두 흑백인 데 대해 그는 “담담하게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색채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엉뚱한 곳을 향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때의 사진들은 ‘골매마을’(2016년)이라는 사진첩으로 묶여 나왔고 현재 중구 40계단문화관에서 ‘여기, 사람이 살고 있어요’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전(오는 3일까지)에서는 골매마을을 비롯해 원전 건립 과정에서 유랑민이 되다시피 한 주민들의 삶을 확인할 수 있다. 장 작가는 “지난 9월부터 신고리5·6호기 공사 재개 공론화 위원회에서 ‘중단’ 결정을 내릴 거라고 낙관해 기념 사진전으로 준비한 것인데 재개 결정이 났다”며 “재난의 위험성이 너무 쉽게 간과되는 듯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장 작가는 ‘사진전에서 단 한 점만을 남겨야 한다면 어떤 작품을 꼽겠느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지팡이를 쥔 채 원전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노파의 뒷모습이 담겼다. 장 작가는 “원전 이주 1세대인 할머니는 치매로 돌아가셨지만, 죽을 때까지 고향 고리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했다. 할머니가 떼는 걸음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삶과 탈핵에 대한 의지는 이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