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편 어려운 중고생 돕기 위해
- 50년간 번 돈 설립기금 기탁
- 구청 참여로 믿고 맡기는 재단
- 시장 상인 등 십시일반 모아
- 매년 60명에 5000만 원 전달

50년 전 경남 통영 한산면에 살던 18세 청년이 부산 자갈치시장에 왔다. 주변 상인들이 ‘언제 잠을 자느냐’고 물을 정도로 하루 3시간만 자면서 휴일 없이 일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처럼 일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남해에서 양식하는 진주 담치를 경상권역에 납품하려고 매일같이 남해를 찾았다. 그곳 사람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렇게 악착같이 번 돈을 장학회 설립에 쓰라며 내놨다. 금강상사 대표이자 (재)중구장학회 이사장인 김현진 이사장의 이야기다.

설립 6년째를 맞은 부산 중구장학회 김현진 이사장은 “중구의 아이들이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뜻 있는 분들의 동참을 바란다”고 말했다. 김종진 기자

올해 6년째를 맞은 중구장학회는 김 이사장이 내놓은 인재양성기금 2억 원으로 시작됐다. 지역 봉사활동 자리에서 만난 김은숙 중구청장에게 그가 먼저 제안했다. “전국 대형마트에 어패류를 납품하게 되는 등 사업이 안정 궤도에 오르면서 사회공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3년 중구 자유총연맹 지회장을 맡으면서 청장님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도와주고 싶은 꿈이 있다고 얘기했죠.”

사실 김 이사장이 장학회 설립을 추진한 것은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2004년께 동의대 행정대학원 최고과정을 다니면서 장학회를 만들려고 했다. 당시 기수회장을 맡으면서 동기와 총동창회 여성회의 도움으로 1억 원가량을 모았지만, 참여도가 저조해 1년 만에 흐지부지 없던 일이 돼버렸다. 장학회 설립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10년간 장학회 설립의 꿈을 품어온 그에게 김은숙 청장은 단번에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구청 공무원 한 명이 장학회 설립 전담으로 배치돼 행정처리를 도맡으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때 고생했던 담당 계장이 지난달 장학회 담당 홍보교육과장으로 돌아온 정수철 씨이다.

“장학회를 만들 때 기금만 있으면 될 줄 알았지 행정 업무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지금도 당시 서류를 보여주면 머리가 아파서 다시 가져가라고 할 정도니까요. 정 과장님이 참 고생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니 더 반갑습니다. 중구장학회가 이만큼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중구의 도움이 여러모로 컸어요. 공무원이 같이한다니까 다들 믿고 기금을 맡겨줬거든요.”

이듬해 출범한 중구장학회는 많은 이의 동참으로 현재 20억 원이 넘는 기금을 모았다. 회원 가운데 300만 원 이상 기탁자들은 자발적으로 ‘중구 나눔리더스’ 모임을 만들어 지속적인 후원을 이어가고 있다. 3만~5만 원의 소액이지만 매월 꼬박꼬박 지역 아이들을 위해 자동이체하는 시장 상인들도 있다. 김 이사장은 이들이 장학회에 가장 큰 도움을 준다고 했다. 중구장학회지만 중구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이들도 있는데, 모두 김 이사장을 믿고 따라온 지인들이다.

이렇게 모인 기금은 매년 고등학생 40명, 중학생 20명에게 총 5000만 원이 장학금으로 전달된다. 올해 초 5회 장학생을 포함해 그동안 총 300여 명에게 2억750만 원이 지급됐다. 매회 장학금 전달식에 참석하는 김 이사장은 “악수를 해보면 성적 우수 장학생인지, 경제적 지원 장학생인지 감이 온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손에 힘이 없더라”며 “그럴수록 더 꽉 잡아주고 어깨라도 한 번 더 두드리며 마음으로 응원한다”고 말했다.

장학회는 2020년까지 기금 30억 원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 불황으로 남을 위해 지갑 열기가 쉽지 않은 탓에 회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김 이사장은 지난달 3000만 원을 더 기탁했다. 그동안 그가 장학회에 낸 기금은 총 3억6000만 원이다. 김 이사장은 “우리 중구의 아이들이 더 큰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소액이라도 매월 자동이체를 하는 등 뜻 있는 일에 많은 분이 동참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