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간 1500회 행사 치르는 등
- 대규모 축제 협력업체로 활동
- “영화 블랙팬서 부산 촬영 때
- 장비 아낌없이 퍼줬어요
- 그래야 다시 찾아올테니까”

부산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 ‘블랙 팬서’. 이 히어로 영화가 설 연휴를 거쳐 개봉 5일 만인 지난 19일 오전 누적 관객 수 309만 명을 돌파하면서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다. ‘부산 팬서’라는 애칭이 붙을 만큼 지역 곳곳이 영화 속 주요 배경으로 등장해 부산 사람들은 영화 관람 때 반갑고 신기한 마음이 앞선다. 부산영상위원회는 ‘블랙 팬서’ 유치를 위해 2016년부터 할리우드 로케이션 매니저와 함께 부산 헌팅을 시작, 관계 기관들의 원활한 협조를 이끌어 내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한국종합렌탈㈜ 강순재 대표는 “국제 행사에 많은 물품을 대여하면서 부산 문화예술 발전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진 기자

한국종합렌탈㈜ 강순재(45) 대표이사도 숨은 조력자 중 한 명이다. “2016년 연말께 블랙 팬서 팀에게 연락이 왔어요. 부산에서 촬영을 했으면 하는데 조명기기나 촬영 장비 대여가 가능하겠냐고요. 당시 회사에서 가지고 있는 물품이 없었지만, 무조건 다 된다 했습니다. 부산에서 어마어마한 작품을 찍는다고 하는데 저도 한몫 거들어야죠. 촬영 장비 구입에 대략 1억5000만 원을 썼더군요. 창업 후 가장 많은 금액을 단일 행사를 위해 쓴 거죠.” 2000년에 창립한 한국종합렌탈은 축제나 행사 등에 사용되는 테이블 의자 컴퓨터 음향기기 등을 대여하는 업체로,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으로 꼽힌다.

무리한 투자가 아니었느냐는 질문에 강 대표는 “국제 행사를 많이 치르면서 부산의 문화예술 발전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돈을 떠나서 할리우드 팀에게 부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차별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손해 보는 기분이 들어도 화끈하고, 확실하게 막 퍼 줘야 제2, 제3의 할리우드 대작들이 부산을 찾지 않겠느냐”고 웃으며 말했다.

경남 고성이 고향인 그는 토목공학을 전공한 뒤 부산에서 건설회사에 다니던 1990년대 후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아침 프로그램에 꽂혔다고 했다. “막연하게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중 프로그램 제목을 ‘무엇이든 빌려드립니다’로 바꿔 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서면 교차로에서 하루 200장씩 명함을 뿌리면서 대여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한국이벤트협회 전 부산지회장을 맡았던 강 대표는 부산불꽃축제, 부산항축제, 지스타(G-Star), 아시안필름마켓, 국제신문 다이아몬드브리지 걷기대회, 부산마라톤대회 등 굵직한 축제의 협력업체로 활동하고 있지만 초창기는 부산진구 전포동에서 6.6㎡ 남짓한 가건물에서 일을 시작했다. 고객의 요청이 있으면 파라솔 하나를 들고 경남 양산 배내골로 달려가고, 천막 1동을 설치하러 여러 행사장을 방문했다. “제 사전에 안 됩니다는 없고, ‘제가 다 구하겠습니다’만 있습니다. 창업 당시 회사 슬로건이 ‘바늘에서 비행기까지 다 빌려준다’였습니다. 허허.” 손해 보는 듯, 내 일처럼 뛰어드는 적극적인 서비스 정신에 2평 남짓 사무실은 현재 강서구 대저동에 1650㎡(500평) 규모로 커졌고, 연간 1500회 행사를 치르는 바쁜 몸이 됐다.

축제 디자인을 연구하기 위해 해외 출장이 잦다는 강 대표는 “디자인에도 트렌드가 있기 때문에 행사 의뢰인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줘야 한다. 부산불꽃축제와는 오랜 인연이 있는데 의자를 색색으로 배치하는 등 변화를 주면서 관람객이 식상하지 않도록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대여업은 ‘공유와 나눔’의 정신에 기반하고 있다는 강 대표는 강서노인체육대회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등 각종 지역·복지 단체 행사에 반값이나 무상으로 물품을 빌려주며 나눔을 실천하려고 애쓴다.

“‘안 남기고 다 나눠야 한다’는 대여업의 정석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욕심을 부리면 더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더 멀리 갈 수 있잖습니까.” 창업 18년째지만 여전히 대여업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강 대표, 인터뷰 내내 행사 기획을 논의하려는 휴대전화 벨이 계속 울렸다.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