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취미 입문해 이수자 길
- 자수 보존·복원프로젝트 참여
- 작년 안동 권씨 봉흉배 재현
- “프랑스 자수 인기 높지만
- 국내선 어렵다 편견에 안배워
- 주1회 넉달이면 습득 충분”

우리 조상은 의복뿐 아니라 병풍, 방석, 댕기, 주머니, 수저집 등 다양한 생활용품에 자수를 놓아 사용했다. 우리 전통자수는 오랜 역사에도 서양자수에 가려 체계적인 계승, 발전이 어려운 상황이다.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나라 전통자수를 지키고 발전시키려 애쓰는 장인이 있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 예헌 전통자수연구실에서 전통자수를 교육하고 연구하는 이명애(56)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이수자다. 그를 만나 우리 전통자수의 매력과 전통을 계승하는 삶에 대해 들었다.

	이명애 국가무형문화재 자수장 이수자가 전통자수로 수놓은 복주머니를 보여주고 있다. 김종진기자 kjj1761@kookje.co.kr

이 이수자는 취미로 자수를 놓다 장인의 길로 들어섰다. 20대 중반이던 1987년 부산여성회관에서 자수를 배우다 전통자수의 매력에 푹 빠진 것이다. 2006, 2007, 2008년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잇따라 수상했고, 2007년 최유현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의 이수자가 됐다. 현재 최유현 자수장으로부터 전통자수 기법을 전수하고, 인정받은 이수자는 열 명가량이다.

국가무형문화재가 전통을 계승하고 보존하는 임무를 띤 만큼 이 이수자는 전통자수를 보존하고 복원하는 프로젝트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립무형유산원의 ‘2017 전통기술 복원연구 과정’ 사업의 하나로 안동 권씨 봉흉배 재현에 참여했다. 왕실 종친인 의원군 이혁의 부인 안동 권씨(1664~1772) 묘에서 출토된 당의에 부착된 봉흉배를 재현하는 작업이었다. 봉흉배는 당의의 앞가슴과 뒷등에 붙여 신분을 표시한 네모 형태의 장식으로 한 쌍의 봉조와 황조가 마주 나는 모습이 오색견사 색실로 섬세하게 수놓아져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땅속에 묻혀 있다 보니 색이 바래 원래의 화려함을 잃었다. 이 이수자를 포함한 연구팀은 철저한 고증을 통해 당시 사용된 재료와 기법을 추정하고, 원래 색상에 가장 가까운 색을 찾아냈다.

그는 전통자수의 현대적 적용에도 관심이 많다. 현대의 전통자수는 생활용품을 장식하는 역할을 넘어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다. 베개 양옆을 장식하는 자수를 따로 떼 액자 형태로 만들고, 전통사찰의 벽화를 자수로 표현한 작품도 있다. 젊은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전통과 현대가 결합한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이 이수자는 “현대의 생활방식이 조상들과 크게 다르다 보니 자수의 활용 방향도 달라지고 있다. 요즘은 아파트에서 인테리어 소품으로 쓸 수 있는 자수 작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 이수자는 전통자수 교육을 통한 대중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지금도 수영구 수영문화원에서 ‘쉽고 고운 우리 자수’ 강의를 하고, 부경대 평생교육원 전통자수 지도자과정 강사로 활약한다. 올해는 국립무형유산원 지원을 받아 대학생에게 전통기술교육 과정의 하나로 자수 교육을 할 계획이다. “젊은 층이 들어와야 전통자수의 명맥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프랑스자수가 큰 인기를 끄는 반면 우리 전통자수는 어렵다는 편견 때문에 배우려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어요. 하지만 전통자수도 주 1회, 넉 달 과정 정도만 들으면 기초적 기법 20개를 익혀 소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겁내지 말고 한번 배우러 오세요.”

“아무것도 없는 천에 그림을 그리듯 감각적,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매력에 빠져 한평생을 전통자수에 쏟은 그는 앞으로 “불교의식 용품이나 민화를 자수로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통자수가 이 이수자의 손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고 발전할지 궁금해진다.

박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