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관람객 잇는 중계인
- 미술관 20주년 숨은 주역

- “가장 높은 단계의 복지는
- 일상처럼 예술 향유하는 것
- 기획전 예산 지원 늘려야”

“우리 아이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내 인생의 1번은 ‘도슨트’입니다.”

부산시립미술관 도슨트 정정숙 씨가 ‘신소장품’전에 출품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1998년 개관한 부산시립미술관이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오늘의 시립미술관이 있기까지 관장, 학예연구사, 직원들의 노고가 컸지만, ‘도슨트’의 역할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도슨트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전시작품을 설명하는 안내인이다. 시립미술관이 2005년부터 자원봉사 도슨트를 선발한 이후 도슨트들은 미술과 관람객을 잇는 ‘중계인’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시립미술관에는 현재 40여 명의 도슨트가 활동하고 있다.

정정숙(52) 씨는 2014년 12월 도슨트를 시작해 부산시립미술관 도슨트회 총무를 맡을 정도로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립미술관은 평일 오후 2, 3시, 주말 오전 11시와 오후 2, 3시 도슨트를 진행한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 관람객이 모이면 도슨트가 40~50분간 전시와 작품에 대해 설명한다. 도슨트 한 사람이 매주 1회 정도 진행을 맡는데 정 씨는 토요일 관람객을 만난다.

정 씨가 도슨트를 시작한 계기는 “미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었다.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했지만, 그림이 좋아 대학원은 응용미술학과로 갔어요. 방송작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잠깐 사회생활을 했는데 결혼 뒤에는 주로 전업주부로 지냈어요. 주부로 사는 동안 미술이 좋아 그림도 그리고 미술관에도 자주 갔어요. 미술관 도슨트를 보고는 내가 아는 그림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면 행복하겠다 싶었죠. 또 그림 공부도 더 하게 될 것 같아 지원했어요.”

두세 달마다 바뀌는 전시를 완벽히 이해하고 관람객에게 설명하는 데는 적지 않은 노력이 든다. 미술관 학예연구사들이 전시에 대한 기본 교육을 해주고 자료를 제공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도슨트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스터디’를 해요. 실제 설명하는 스크립트보다 2, 3배 더 많은 정보를 준비한답니다.” 이중섭, 유영국 같은 유명한 근현대미술 작가는 관련 책이나 자료가 많아 그나마 준비가 수월한 편이다. 신진 작가에 대한 준비가 더 까다롭다. “인터넷에 있는 정보는 샅샅이 뒤지고, ‘작가와의 대화’ 같은 행사에 참여해 작가의 의도를 직접 듣고 참고해요.”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관람객이 만족하며 돌아갈 때다. 도슨트 투어가 끝나면 박수를 치고 엄지를 척 내밀며 고마움을 표하는 관람객이 많다. “지난해 이중섭전은 연세 드신 관람객이 많았어요. 이중섭처럼 고향이 이북인 분들은 6·25전쟁 때 그려진 그림을 보고 감정이입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어떤 할머니께서 제 전시설명을 듣고 감동받았다며 ‘밥을 사겠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그럴 때 참 뿌듯하죠.” 그는 “아직 도슨트 제도를 몰라 활용하지 못하는 관람객이 많다”며 “도슨트 설명을 들으면 전시를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산시민 중 시립미술관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도슨트일 것”이라고 자부했다. 2005년 첫 기수 때 뽑혀 13년째 활동하는 도슨트도 있고, 설명을 더 잘하고 싶어 미술교육 대학원에 진학한 도슨트도 있다. 시립미술관을 향한 조건 없는 애정이 느껴진다. 그런 만큼 시립미술관에 대한 당부도 있다. 애정에서 나오는 쓴소리다.

“관람객을 끌어들일 좋은 기획전을 더 만들면 좋겠어요. 좋은 전시에는 반드시 관람객이 몰린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어요. 시에도 부탁하고 싶어요. 가장 높은 단계의 복지는 시민이 일상처럼 예술을 향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미술관이 좋은 기획전, 수준 높은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예산이 필요합니다. 부산 대표 미술관에 좀 더 ‘충분한’ 예산을 지원해주길 바랍니다.”

박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