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최다헌혈 이영호 씨
- 사고로 한쪽 팔 마비에도
- 194회 기록한 강석찬 씨
- 헌혈증 기부 김경민 씨 등
- 지역 열혈 헌혈자들 눈길

“사람이 세상에 나오려면 엄마 배 속에서 10달, 성인이 되려면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한데 다른 생명을 구하는 데는 30분이면 충분합니다. 환갑이 넘은 내가 계속해서 헌혈의 집을 찾는 이유지요.”(부산 최다헌혈자 이영호 씨)

세계헌혈자의날(6월 14일)을 맞아 부산의 열혈 헌혈자들도 눈길을 끌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혈액관리본부 명예의전당에 올라 있는 이영호(463회·최다) 강석찬(194회) 김경민(130회) 씨.

오는 14일은 세계헌혈자의날(World Blood Donor Day)이다. 타인과 자신의 피를 기꺼이 나누는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2004년 제정됐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100회 이상 헌혈한 사람을 ‘명예의전당’에 올리는데, 부산에는 8일 기준 277명이 등록돼 있다.

이 가운데 부산지역 최다 헌혈로 맨 앞에 이름을 올린 이는 이영호(64) 씨다. 1977년 처음으로 헌혈버스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헌혈 횟수는 무려 463회. “건강이 허락하는 한 70살이 될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그의 기록은 매월 경신 중이다. “23살 군대 말년 휴가 때 부산역 앞에 헌혈버스가 서 있길래 호기심에 들어가봤습니다. 막상 들어가니 겁이 좀 나더군요. 그때 40대 자원봉사자가 ‘군인이 무서워하면 헌혈은 누가 하겠냐’는 말에 물러날 수 없어 결국 팔에 바늘을 꽂았죠(웃음).”

그의 ‘헌혈 사랑’은 단순히 자신의 피를 나누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주말마다 거리에서 펼치는 헌혈 캠페인에도 참여한다. 봉사시간만 2000시간이 넘는다. “한 번씩 어린 학생이 헌혈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려고 하면 동행하던 부모님이 팔을 잡아끌며 말릴 때가 있어요. 몸에 안 좋다고 생각해서겠지요. 하지만 헌혈을 한다고 해서 건강이 나빠지지 않습니다. 내가 산증인이에요. 수십 년간 술 담배한 친구들보다 내가 훨씬 건강하니까요. 몸에 나쁜 건 술 담배지, 헌혈이 아닙니다.”

이번 세계헌혈자의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헌혈자도 있다. 이날 사직야구장에서 열리는 롯데와 삼성 경기에 시구자로 나서는 강석찬(43) 씨가 주인공. 남구 문현3동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는 그는 194번 헌혈 침대에 누웠다. 강 씨의 생명 나눔이 특별한 이유는 횟수뿐만이 아니다. 2002년 대학 졸업식 날 교통사고로 오른쪽 팔이 마비되면서 지체2급 장애를 얻었지만, 지금까지도 꾸준히 헌혈을 이어왔다는 데 의미가 깊다.

강 씨는 몸이 불편해졌지만 헌혈을 그만두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는 헌혈의집을 찾을 수 없게 될까 봐 걱정했을 정도다. “헌혈할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표입니다. 건강상태와 혈압, 당뇨 등 몸에 이상이 없어야 할 수 있어요. 정기적으로 건강검진한다는 생각으로 헌혈을 합니다. 실제 혈액 검사표를 보고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도 있고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건강함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평범한 직장인인 김경민(35) 씨도 이러한 ‘습관적’ 헌혈을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에어부산 공항서비스팀에서 일하는 김 씨는 고등학생일 때 친구 따라 헌혈버스에 올랐다가 지금까지 130회를 달성했다. 어릴 땐 친구 따라, 군에서는 공중전화 카드를 받으려 ‘아까운’ 피를 뽑았지만, 이제는 아무런 대가 없이도 자신의 피를 내어줄 정도로 헌혈이 자연스러워졌다고 한다. “헌혈을 하는 데 사명감이라든가 거창한 이유는 없어요.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작은 만족감으로 계속하는 거죠.” 헌혈증은 주변에 수술을 하는 이에게 모두 기부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조혈모세포 기증 등록도 마쳤다.

한편 부산혈액원은 매년 헌혈량 목표를 세우고 있는데 해가 갈수록 달성률이 떨어지는 추세다. 특히 2015년 11월 부산권역외상센터가 문을 연 이후 부울경 외상환자가 부산으로 몰리면서 혈액수요량이 급증한 탓에 만성부족에 시달리는 실정이다. 대한적십자사 김상진 부산혈액원장은 “세계헌혈자의날을 맞아 자신의 삶을 흔쾌히 나눠주는 헌혈자에게 감사를 표한다. 부산지역은 혈액수요가 많기 때문에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절실하다. 부산혈액원은 시민의 생명나눔을 기다리며 항상 대기하고 있겠다”고 부탁했다. 최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