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여 년 양성평등 구현 앞장
- 올해 ‘부산여성상’ 수상
- “지역 보수성·가부장성 여전
- 보수·진보 떠나 연대 필요”

“제가 부산 여성활동가의 롤모델이라니 과찬입니다. 함께 진보여성운동을 해 온 부산지역 모든 단체를 대표해 먼저 받는 상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35년 동안 그러했듯 앞으로도 지역의 여성동지들과 함께 여성의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도록 현장에서 뛰겠습니다.”

올해 ‘부산여성상’을 수상한 이기숙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이사장이 지난 35년간 부산지역 여성 활동가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정빈 기자

지난 6일 부산시청 1층 대강당에서 열린 ‘2018 양성평등주간 기념식’에서 올해 ‘부산여성상’을 수상한 이기숙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이사장은 수상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양성평등사회 구현과 여성의 권익증진에 기여한 공적이 뛰어난 여성에게 수여하는 부산여성상은 이 이사장과 김은숙 전 부산 중구청장이 공동 수상했다. 이 이사장은 부산지역 대학에서 여성인재를 양성하고, 신라대 여성문제연구소 소장, ㈔부산여성사회교육원 초대원장 등을 역임하며 학계와 시민운동계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에게 일찍부터 여성운동에 천착한 이유를 묻자 “시대의 요청에 지식인, 여성교육 담당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다고 답했다. 민주화운동과 함께 부산의 여성운동이 활발했던 1980년대에 이 이사장은 신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시대적 부름에 그는 동료 여교수와 ‘여성문제연구소’를 창립하고 ‘여성학 강좌’ 개설, ‘여교수회’ 창립, ‘대학원 여성학과’ 개설 등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1994년에는 양성평등교육의 확산을 위해 만들어진 부산여성사회교육원의 초대원장을 맡았다.

30여 년 동안 여성 운동을 하면서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지역의 정치적 보수성과 항구도시가 지닌 강한 가부장성이었다. 재정적인 문제도 그를 힘들게 했다. 그럴 때마다 함께한 여성활동가들이 큰 힘이 됐다. “부산에 어느 지역보다 우수한 여성활동가가 많았기 때문에 서로 의지하며 열심히 활동해온 것 같습니다. 많은 여성의 후원과 회원 등록, 박봉으로 근무하는 상근활동가의 헌신으로 여러 어려움을 헤쳐올 수 있었어요.”

이 이사장은 지역 여성계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바라봤다. 그는 “부산지역 여성계는 크게 보수와 진보 성향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동안 활동성과 성과 평가가 일치하지 않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며 “요즘은 ‘여성의제’가 대단히 빨리 바뀌고 있다. 보수 진보를 떠나 다함께 연대하고 새로운 실천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고 지적했다.

대학 강단에서 30년 넘게 페미니즘을 가르쳤던 그는 최근의 미투운동, 페미니즘 등 여성 이슈에 대해 “여성이 바뀐 만큼 남성의식이 바뀌지 않았다”고 꼬집기도 했다. 한 세대의 의식이 완전히 바뀐 이 시점에도 많은 남성이 ‘남존여비 사상’을 지니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남성중심 폭력중심의 일상에 대한 여성의 저항은 근대 이전의 사료에서도 발견되곤 합니다. 결코 작금의 현상이 아니죠. 이러한 현상은 문화현상에 그쳐서는 안되고, 지속적으로 제도와 관련 법령을 정비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는 지방정부의 여성대표성 확대, 젠더폭력 대응체계 강화 및 중고등 페미니즘 교육, 공공보육 강화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신라대학교, 부산여자대학,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등에서 여성학 교수로 재임하며 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이사장, 부산성폭력상담소 자문위원, ㈔부산여성정책연구소 자문위원, (재)부산여성가족개발원 이사, ㈔부산여성사회교육원 이사장 등 요직을 맡아, 여성단체가 지역에 뿌리내리고 학계와 시민운동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2015년 퇴임 후에도, ㈔자치21 이사장, ㈔여성인권문화센터 이사, ㈔부산여성단체연합 자문위원 등 끊임없이 여성단체와 시민단체의 멘토이자, 성평등사회 를 위한 노력가로 활동하고 있다.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