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때 北전쟁고아 1500명
- 폴란드로 보내진 사건 기록
- “2014년 극심한 산후우울증
- 이 영화 만들며 극복하게 돼
- 관객들 상처도 어루만지길”

태풍 콩레이가 부산을 관통하면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많은 행사가 차질을 빚었던 지난달 6일 추상미(45) 감독은 해운대의 한 극장을 찾았다. BIFF에 공식 초청받은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GV(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연출한 배우 출신의 영화감독 추상미. 보아스필름 제공

“태풍 때문에 GV가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하지만 한 명의 관객이 오더라도 직접 가서 GV를 못 할 것 같다는 말을 전해야 할 것 같았어요. 7명의 관객이 입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막상 상영관에 들어가니 150명의 관객이 그 험한 날씨에 영화를 보러 와 주셨더라고요. 너무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절로 났습니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개봉(지난달 31일)을 맞아 최근에 만난 추 감독은 당시 느꼈던 떨림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그는 우리에게 영화 ‘생활의 발견’ ‘누구나 비밀은 있다’, 드라마 ‘해바라기’ ‘노란 손수건’ ‘사랑과 야망’ 등에 출연한 실력파 배우로 각인됐지만 결혼과 출산을 거쳐 영화감독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왔다.

추 감독이 연출한 첫 번째 장편영화이자 다큐멘터리인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1951년 한국전쟁 중 북한이 비밀리에 폴란드로 1500명의 전쟁고아를 보냈다 8년 후 다시 송환하는 과정과 당시 아이들을 사랑으로 품었던 폴란드 선생님의 인터뷰를 담았다. 추 감독과 탈북소녀 이송이 직접 폴란드로 날아가 전쟁고아들의 행적을 따라갔고, 7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아이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폴란드 선생님들을 만났다.

배우생활을 잠시 접은 후 극영화 감독으로 활동하던 추 감독이 한국전쟁 고아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2014년 오랜 산후우울증을 겪을 때 ‘꽃제비’(먹을 것을 찾아 떠도는 북한 아이들을 일컫는 은어) 영상을 보고 북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는데, 마침 지인이 다니는 출판사에 갔다가 폴란드로 간 전쟁고아들의 실화를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이 소재를 ‘그루터기’라는 극영화로 만들기 위해 리서치 작업을 했어요. 그 과정에서 영화에도 등장하는 요제프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는데 이미 아흔을 넘긴 나이었습니다. 2015년 극영화를 위해 인터뷰를 하러 가면서 단지 인터뷰로 마치는 것이 아쉬워서 다큐멘터리로 만들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추 감독의 설명을 들으면서 탈북소녀이자 ‘그루터기’를 위해 진행한 오디션에 참여한 배우 지망생 이송과 함께 폴란드에 간 이유가 궁금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남북의 여자가 함께 가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폴란드 선생님들이 북한 아이들이 착했고 열심히 공부했다는 말을 듣고 송이가 난생처음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것에 자부심이 생겼다고 했어요. 힘들게 살았던 개인사를 가지고 있고, 남한에서 무시당했던 송이한테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는 동시에 정체성도 회복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송이와 마찬가지로 추 감독 자신도 폴란드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산후우울증이 치유됐다. 그는 “선생님들도 어린 시절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의 상처를 입어 먼 나라에서 온 아이들을 더 사랑할 수 있었다”며 “상처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게 사용되는지 깨달아 영화 속에서 저의 개인적인 상처를 밝히게 됐다”고 말했다.

추 감독은 영화를 볼 관객들에게 “상처는 버려지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긍정적으로 발현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슬픔은 슬픔으로 치유된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영화를 보고 많이 울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