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에서 사진작가로 변신
- 11일까지 시청서 첫 전시회
- 3년간 찍은 3000점 중 60점
- 빛·각도 따라 다른 모습 담아
- 희로애락 인간상 연에 투영

‘촌철살인의 유머’. 행사장에서 인사말을 할 때 그는 좌중을 ‘빵 터지게’ 하는 재주가 있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의 으레 장황하고 상투적인 말 대신 그 장소, 행사의 성격에 맞게 순발력 있으면서도 재치 있게 소개해 웃음 짓게 한다. 재치 번득이는 유머감각을 바탕으로 40여 년 정치인으로 살았던 그가 이제 또 다른 도전으로 대중 앞에 섰다.

5일부터 부산시청 전시실에서 사진전을 여는 부산시의회 제종모 전 의장이 지난 3년간 전국을 돌며 촬영한 연꽃 작품 앞에서 포즈를 잡고 있다. 서순용 선임기자

사진작가로 변신해 5일부터 오는 11일까지 부산시청 제1전시실에서 생애 첫 사진전 ‘연(蓮)의 백태’를 여는 제종모 전 부산시의회 의장. 부산시의회 5대 후반기(2008~2010년)·6대 전반기(2010~2012년) 의장을 지낸 그는 전시를 앞두고 연일 긴장 속에 지낸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3년간 촬영한 3000여 점 중 60점을 선보인다. “1차로 1000점을 걸러낸 뒤 200점을 도록에 싣고, 다시 추려냈습니다.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자식 같아서 쉽게 걸러지질 않더군요. 전문 작가가 객관적으로 평가한 사진을 전시에 소개합니다.”

사실 제 전 의장은 오래전부터 사진을 찍었다. 경남 고성 출신으로 동아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는 대학시절부터 사진을 촬영해 왔다. 그러다 1980년대 초 본격적으로 정치를 하면서 사진은 한쪽으로 제쳐둘 수밖에 없었다.

“2016년부터 연꽃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경주 밀양 함양 부여 등지로 연을 찾아 렌즈를 갖다 대면 마치 나를 기다리던 연이 빙그레 웃는 것 같아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곤 했습니다.” 지난 3년간 연을 찾아 헤맨 모습은 때론 웃기고, 때론 처절하다. 몇 시간씩 차를 몰고 충남 부여의 시골길을 달려 새벽이슬을 머금은 연을 찾아 기웃대고, 가까이서 찍기 위해 조금씩 꽃에 다가가다 연밭에 빠져 나뒹굴 때도 있었다. 빙판에 빠지거나, 한여름 땀이 눈 속으로 파고들어 혼이 나기 일쑤였다. ‘이 나이에 뭐 하나’ 싶다가도 마음에 쏙 드는 연을 만나 렌즈에 담을 때면 ‘이 맛에 또 온다’ 싶기도 하단다.

제 전 의장은 “출사를 다니다 보면 새벽부터 오후 4시까지 쫓아다녀도 배고픈 줄 모른다. 한 번 나갈 때마다 연밭을 4바퀴씩 도는데, 빛의 각도에 따라 형태가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작품도 찍고 운동도 된다”고 허허 웃었다.

연의 어떤 점에 그렇게 매료됐을까. 그는 “불교용어로 ‘처염상정’이란 말이 있다.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지만 결코 더러운 흙탕물이 묻지 않는 연꽃을 상징하는 말이다. 연은 사계절 볼거리가 다양하다. 잎, 꽃, 줄기 등 비바람을 이기고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본 연꽃은 피고 지는 순간에도 청정하고 순결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더라. 그냥 꽃이 아닌, 인간이나 동물의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꽃이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어미새의 모이를 기다리는 새끼로도 보이고, 사랑하는 연인이 부둥켜안고 있는 것도 같고 다양하다”고 덧붙였다.

연과 사랑에 빠졌다는 그를 보며, 수십 년간 정치인으로 살던 시절이 그립지 않을까 싶었다. 그는 “그땐 늘 긴장 속에 살았다. 어떻게 하면 민원을 해결할까, 시민이 행복한 쪽으로 결정할 수 있을까 등이 모두 고민거리였다. 그만둘 때는 아쉬움보다 이제 벗어난다는 안도감에 정말 마음이 편했다”고 말했다.

개인전을 앞둔 그는 시험 전 수험생처럼 마음이 떨린다고 했다. “연의 새로운 형상을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요. 꼭 찍고 싶은 연이 무리 중간에 들어가 있어 렌즈에 담지 못할 때는 나를 외면하나 싶어 마음이 아프고, 가장자리에서 떡하니 펴 있으면 나를 기다렸나 싶은 착각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번 전시에서 사계절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변모하고 있는 연의 순간을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기쁨과 행복을 느꼈으면 합니다.”

‘연에 대한 사랑은 달팽이의 여정처럼 계속될 것’이라는 다짐은 앞으로도 그의 렌즈에서 피고 질, 무궁무진한 연의 형상들을 기대하게 한다.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