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제사 13번 6대 종부
- 두 아이 명문대 보내고
- 29년 방송무대 누빈 PD
- 10인 일·살림·육아 고군분투
- 저서로 엮어 용기 나누고파

부산에서 그 이름만으로 브랜드인 방송인이 있다. 속사포처럼 빠른 말 속에 재치 있는 언변을 갖춘 달변가. 말솜씨만큼 경력도 화려하다. 예능 및 다큐멘터리 제작, 팟캐스트 진행,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작품상·뉴욕페스티벌 사회이슈 금상 수상(2015) 등. 최근 그가 워킹맘의 마음을 쓰다듬는 책(‘상위 1프로 워킹맘’)을 냈다. 워킹맘으로 두 아이를 명문대에 보낸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9인 워킹맘의 사연이다. 같은 워킹맘으로서, 부러운 마음으로 책을 꺼내 들었다가 그들의 기막힌 일상에 감정 이입돼 시샘 대신 코끝 찡한 감동을 느꼈다. 주인공은 1990년 이문세가 진행하는‘별이빛나는밤에’의 작가로 방송에 입문해 방송작가 7년, PD 22년 차를 보내고 있는 BeFM 부산영어방송 유정임 국장이다.

부산영어방송 유정임 국장은 “각자 영역에서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상위 1프로가 되고 싶은 워킹맘들에게 책을 통해 용기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집안일 안 할 것 같죠. 이래 봬도 1년에 13번 제사 지내는 6대 종부예요. 결혼하고 KNN(옛 PSB)에 공채PD로 입사해서 일을 즐길 때 첫 애를 임신했어요. 매일 새벽 1시까지 야근을 하자 어느 날 남편이 출근길을 막아서데요. 사표 쓰라고. 그 어렵게 공부한 걸 하루아침에 그만두라니 용납할 수 없었어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일을 버리지 못하는 엄마들에게 더더욱 포기할 수 없는 육아라는 실타래의 고리를 풀어줄 해법을 제 경험을 통해 나누고 싶었어요. 이 책은 자녀교육서도, 육아서도 아니에요. 온전히 육아와 함께 일을 지켜온 엄마들의 마음을 담은 이야기죠.”

책을 쓴 계기를 묻기 무섭게 다음 질문이 필요 없을 만큼 알아서 척척이다. 사표를 내고 싶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었을까마는 그는 둘째를 낳고 2개월 만에 출근할 때 가장 힘들었노라고 말했다. 연년생 큰아이는 출근 때마다 대성통곡을 하고 집과 회사에는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사방천지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던 그런 시절이었다.

“당시 방송계 선배들과 점심을 먹다가 사표 얘기를 했어요. 한 선배가 ‘몇 살까지 키우고 나오면 마음이 놓이겠어?’ 하길래, ‘제 발로 걷는 두 살쯤요’ 했죠. 잠시 후 그가 ‘그런데 말이지, 학교 가면 완전 엄마가 필요해. 중학교? 옆에서 지켜야 해. 고등학교는 직장도 그만두고 아이 옆으로 돌아가는 엄마도 많아’ 하는 거예요. 내 아이니까 보고 싶겠지만, 결코 미안해하지 말라고. 시간 없으면 없는 대로 진하게 사랑하면 된다는 그 말씀이 저를 살렸죠.”

책에 실린 황보승희 전 부산시의원, 조혜영 전 여성신문사 편집국장, 정보영 전 MBC 아나운서, 조은아 ㈜문화콩 대표 등 워킹맘 9인의 일상도 눈물겹다. 그는 “워킹맘은 돈 벌러 나간다기보다 ‘나’를 찾으러 나온다고 생각한다. 결국 아이들은 독립하고 우리도 우리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느냐. 그런 점에서 시어머니께 감사드린다. 다들 아이 키우는 데 그 돈 쓸 거면 차라리 네가 키우라 하시는데, 당신은 나가서 버는 돈은 너와 아이를 위해서 다 써라. 네가 편해야 아이한테도 잘한다. 그렇게 견디다 보면 어느 날 ‘너의 일이 남을 거다’고 하셨다. 워킹맘을 키우고 만드는 건 가족의 응원이고 지지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에서 워킹맘으로 산다는 건, 등굣길에 급하게 입힌 아이 내복과 양말에 구멍이 나 있고, 시커멓게 자란 아이 손톱이 지적당하고, 엄마 가방 속 파우치에 아이 젓가락이 딸려 나오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넘겨야 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도 구멍 난 양말에 테이프를 붙이고, 혼자 병원에 가 부러진 다리를 깁스해 와 엄마를 먹먹하게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유 국장은 “육아는 ‘정성의 과학’이다. 상위 1프로는 성적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각자 영역에서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 미래에 대한 도전, 그 열정의 상위 1프로가 되고 싶은 워킹맘들에게 이 책을 통해 용기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임은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