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학으로 38년째 작품 활동
- 10년 전 생업도 내팽개치고
- 자연과 역동적인 삶 그려와
- 사우나 청소하며 생계 유지
- 광안동서 7번째 개인전 열어

그림 작업에 매진하기 위해 본업인 가구점을 접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다. 이후 화실 임대료 등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기 위해 사우나 야간 아르바이트, 건물 경비원 등을 하며 작업하고 있다. 그는 생계형 작가로서 경험과 삶의 태도를 바탕으로 ‘부산’이라는 지역성이 잘 드러나는 풍경을 그려낸다.

한재용 작가가 부산 수영구 광안동 미광화랑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스쿠터 타는 남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작업에만 몰두하다 보니 그림은 더 좋아졌어요.” 최근 부산 수영구 광안동 미광화랑에서 만난 한재용(62) 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이날도 사우나에서 심야 청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오전 7시가 돼서야 퇴근했다고 했다.

한 작가는 미광화랑에서 오는 20일까지 개인전 ‘해운대 연가’를 연다. 벌써 7번째 개인전이다. 난전에서 활어를 파는 아주머니와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미포풍경’, 자갈치 건어물 시장에 있는 일식 가옥의 풍경을 담은 ‘선창별곡’, 해운대 달맞이 고개를 그린 ‘추리문학관 가는 길’ 등 최근 작품 40여 점을 선보인다. 다양한 부산의 풍경을 저마다 맛깔스럽게 드러낸 캐릭터와 기법으로 조화롭게 표현했다. 그는 “화가로서 부산에 산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바다와 산과 강이 어우러지는 역동적인 풍광과 그 속에서 활기차게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열정 가득한 일상을 담은 것이 이번 전시”라고 했다.

한 작가는 정식 미술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고교 졸업이 최종 학력이다. 그림이 좋아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1980년부터 2007년까지 부산일요화가회에서 활동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30여 년을 생업과 취미 사이에서 그림을 그려왔던 그는 ‘언제쯤이면 그림만 그릴 수 있을까’ 머리를 싸맸다. 결국 2008년 가구점을 접는 ‘대형 사고’를 쳤다. 한 작가는 “더 늦기 전에 그림에만 몰두해보자는 생각만 가득했다”고 그날을 떠올렸다.

지금은 사우나에서 심야 청소 일을 하며 하루 4시간 이상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일은 고되지만 마치고 난 뒤에 집중해서 작업할 수 있어서 훨씬 좋아요. 10년 동안 그림을 그리다 보니 전에는 핵심만 보였는데 이제 여백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말하고 싶은 것은 줄이고 단순하면서도 감동을 주는 작업을 추구하고 있어요.”

그의 작품에는 부산 풍경 외에도 자전적 이야기가 녹아 있는 것들도 눈에 띈다. 사우나에서 청소 일을 하던 중 실수로 여탕에 들어간 경험을 담은 ‘아뿔싸’, 치과 진료비 대신 자신의 작품 한 점을 지급했던 경험을 그린 ‘자애로운 의사 선생님’, 그림 판 돈으로 생애 처음 아내와 함께 간 유럽 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을 그린 ‘묻지마 관광’ 등이다. 낙천적이고 호기로운 작가의 기질이 그대로 담겼다. 재빠른 필치는 다소 거칠고 정제되지 않았지만 순진무구한 느낌을 준다.

인터뷰 도중, 그가 주머니에서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수첩을 꺼냈다. 그가 늘 갖고 다니는 드로잉 노트다. “풍경도 보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에 주목하는 편이에요. 일상 속 재미있는 장면이 보이면 스케치해뒀다가 작품으로 옮기죠.” 전시장에 걸린 40여 점의 그림 속 인물은 모두 230명. 이들이 각기 다른 모습과 직업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는 앞으로 좀 더 자기 내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화적 세련됨보다는 사소한 것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부산도 좀 더 파고들 계획입니다.” 현재 작업 중인 비구상 작품 ‘우짜라꼬’ 시리즈가 그의 손끝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증을 높인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