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캐릭터 실사처럼 재연
- 해외 매체들 “혁명적 비주얼”
- 14년 전 ‘디워’ 작업이 발판
- 세계적 CG업체 입사 뒤 위기
- 한국 특유 협동정신으로 타개

“이것은 가장 혁신적인 비주얼이다!” 지난 2월 초 한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알리타:배틀 엔젤’이 개봉했을 때 국내외의 많은 매체가 보인 반응이다.

‘해리포터’ ‘로그원:스타워즈 스토리’ ‘혹성탈출:종의 전쟁’ 등과 같은 블록버스터를 작업한 김기범 CG 감독.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제공

영화 ‘타이타닉’과 ‘아바타’를 연출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제작을 맡은 이 작품은 실사 영화 최초로 CG(컴퓨터그래픽)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최첨단의 CG 기술이 집약된 영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랑스럽게도 한국인인 김기범 CG 감독이 자리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시각효과 디지털 스튜디오에서 근무하는 그는 ‘알리타:배틀 엔젤’ CG를 총괄하며 멋진 신세계를 창조해냈다. 최근 ‘알리타: 배틀 엔젤’의 개봉에 맞춰 내한한 김 감독은 “가히 혁명적인 작업”이라며 영화에 대한 자부심을 표했다.

김 감독은 CG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에게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웨타 디지털에서 어떻게 성공했을까? 시작은 대학시절로 올라간다. 한국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김 감독은 14년 전 심형래 감독이 설립한 영구아트무비에서는 ‘디 워’ 작업을 했다. “당시 국내에서 크리처(괴물) 캐릭터를 디자인할 기회가 없었는데, ‘디 워’의 이무기는 외국인도 인정하는 크리처였습니다.” ‘디 워’로 자신감을 얻은 김 감독은 해외로 눈을 돌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전 세계 25개의 CG업체에 포트폴리오를 돌렸다. 그중 ILM과 픽사에서 연락이 왔다. ILM은 웨타 디지털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시각효과 디지털 스튜디오고, 픽사는 월트 디즈니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김 감독은 ILM을 선택했다.

ILM 싱가포르 지사에서 근무하게 된 그는 언어가 안되는 상태에서 오직 열정으로 많은 분량의 일을 해나갔다. “남들보다 많은 작업을 하니 더 많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차츰 작업도 수월해지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승진도 했습니다.” 그렇게 쉼 없이 일을 한 덕분에 ‘해리포터’ 시리즈 3, 4편의 배경 작업을 시작으로 차츰 중요도를 높이며 ‘어벤져스’ 시퀀스 감독을 거쳐 ‘로그원: 스타워즈 스토리’ CG 감독을 맡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알리타:배틀 엔젤’

ILM에서 성공한 김 감독은 새로운 도전 의식이 생겼다. ‘웨타 디지털에서도 내가 통할까?’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2016년 CG업계의 경쟁업체인 웨타 디지털로 이적한 김 감독은 첫 프로젝트로 ‘혹성탈출:종의 전쟁’에 시니어 슈퍼바이저로 참여한다. “처음 석 달은 무한 후회를 했습니다. 외부에서 경력직으로 들어온 저는 팀원들의 신임을 받아야만 했죠.” 그런 위기 상황을 돌파하게 된 계기는 한국적 작업 마인드다. “일반적으로 외국 사람들은 자신이 맡은 일만 하고 다른 사람의 일에 관여를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작업 평가 시간을 갖고 팀원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바로 뛰어들어 함께 고민하며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서 단시간 내에 팀원들과 하나가 됐습니다.” 그렇게 ‘혹성탈출: 종의 전쟁’을 훌륭하게 마친 김 감독은 ‘알리타:배틀 엔젤’에서 CG를 총괄하는 자리에 섰다. 김 감독과 웨타 디지털은 한층 진일보한 퍼포먼스 캡처와 3D 기술력을 바탕으로 ‘액터 퍼펫(Actor Puppet)’이라는 실제 배우와 똑같은 모습의 디지털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전 세계 3억50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현재 ‘와호장룡’ ‘색, 계’ ‘라이프 오브 파이’를 연출한 세계적인 거장 이안 감독의 ‘제미니 맨’에 참여하고 있는 김 감독은 “아직 밝힐 수 없지만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도 있다. 제가 경험한 것을 한국영화에 잘 녹여 아카데미 시상식 특수효과상이나 시각효과상 후보에 오르게 하는 게 저의 목표다”라는 포부를 전했다.

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