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서 맛에 반해 생업 삼아
- 와인과 달리 손맛 큰 영향
- 양조장, 4년새 2배로 늘어
- 지역화 전략 세워 펍 키우면
- 도시재생에도 기여 가능해

부산 수영구 광안리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수제맥주 양조장과 펍(pub)이 모인 수제맥주의 ‘성지’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의 수제맥주 마니아가 광안리에 ‘펍 크롤(하룻밤에 여러 펍을 돌면서 다양한 맥주를 맛보는 행위)’ 원정을 온다. 광안리와 해운대구 송정에서 펍을 운영하는 와일드웨이브 이창민 공동대표는 광안점을 내면서 수제맥주의 성지 광안리에 헌정하는 의미로 ‘광안 바이스’라는 맥주를 새로 만들었다. 그는 송정점에서도 서퍼들의 성지인 송정에 헌정하기 위해 ‘서핑 하이’를 만든 경험이 있다. 그는 “광안 바이스와 서핑 하이는 수제맥주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달콤하고 목넘김이 깔끔한 맥주”라고 소개했다.

이창민 대표는 “수제맥주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기 위해서는 양조장과 펍의 지역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영국 브리스톨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던 시절 우연히 작은 펍에 들어가서 ‘펑크IPA’를 마셔봤는데 신세계였어요. 쌉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일 맛이 어우러지는 조화가 신기했습니다. 한국에선 접해보지 못했던 맥주였죠. 나중에 알고 보니 영국에서 가장 큰 수제맥주 회사 ‘브루독’에서 만들었더군요. 교환학생 기간이 끝나고 2년간 세계일주를 하면서도 그 맛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한 잔이 한국에 돌아와 수제맥주 업계로 뛰어든 이유가 됐습니다.”

‘사람의 의지가 반영되는 다양성’. 이 대표가 수제맥주에서 느낀 가장 큰 매력이다. 와인도 맥주만큼이나 다양하지만 사람의 힘으로 맛과 향을 제어하기 힘들다. 같은 품종의 포도를 같은 방식으로 재배했어도 기후와 토양의 상태에 따라 매년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반면 수제맥주는 첨가하는 부재료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종류를 훨씬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와일드웨이브를 비롯해 많은 펍이 초콜릿, 유자, 배, 곶감, 매실 등의 부재료를 이용해 여러 계절 맥주를 만들어내고 있다.

“수제맥주를 알기 전 와인을 즐겼는데 좀 까다로웠어요. 기후에 따라 맛있고, 맛없는 와인이 만들어지니까요. 맥주는 양조사가 의지를 가지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다양한 결과물을 낼 수 있습니다. 혼자서도 누구나 가볍게 시작할 수 있고, 원하는 맛을 빠르게 찾아갈 수 있다는 점이 수제맥주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2014년 주세법 개정 이후 소규모 양조장의 외부 유통이 허용되면서 전국 각지에 수제맥주 양조장과 펍이 생겨나고 있다. 2014년 54개였던 수제맥주 업체는 지난해 10월 기준 108개로 느는 등 대중화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수제맥주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기 위해서는 양조장과 펍의 지역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이 대표는 역설했다. 수제맥주 펍이 지역에 있는 여러 기관과 협력해 고유문화를 만들어 내기 시작하면 도시 재생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와일드웨이브는 지난해 9월 환경을 생각한 티셔츠와 에코백을 만드는 사회적기업인 ‘유니온 웨이브’와 함께 해운대해수욕장과 수영강변 일대에서 ‘플로깅’을 진행했다. 스웨덴에서 시작된 플로깅은 ‘Plokka-up(줍다)’과 ‘Jogging(조깅)’의 합성어로, 건강을 지키며 쓰레기 줍기를 통한 환경보호를 동시에 할 수 있는 활동이다.

“단순히 양조장이 있는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로 맥주를 만든다는 1차원적인 접근 이상이 필요합니다. 부산에는 수제맥주뿐 아니라 질 좋은 커피를 만드는 로스터리도 많고, 가죽제품을 잘 만드는 업체도 있죠. 이들과 협업해 커피를 이용한 흑맥주를 만든다든지, 와일드웨이브의 소파를 만드는 등의 방법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버려진 도시가 수제맥주로 되살아난 미국 포틀랜드처럼 수제맥주 펍이 지역의 여러 주체와 협력하면 지역도 살아나고 수제맥주도 대중화될 것입니다.”

류민하 기자 skycolor@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