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동문
- 고교생 시절 선거캠프 참여
- 문정수 의원 보좌관도 지내

- 1987년 6월항쟁 부산본부
- 노 전 대통령과 함께 투쟁해

2017년 5월 개봉한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당시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영화의 새 역사를 썼다. 최단기간 100만 관객 돌파, 사상 최고 오프닝 스코어 등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문재인 대통령, 영화배우 문성근 등 ‘노무현의 사람들’ 39명의 인터뷰를 담아 노 전 대통령을 재조명한 이 영화에서 전혀 생소한 사람이 ‘씬스틸러’(주연 못지않게 주목을 받는 조연)로 등장했다. 배갑상 전문건설공제조합 상임감사는 영화에서 “화를 내는데 그 밑에 슬픔이 든 게 보이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영구 중독돼서 못 빠져나온다”는 회고로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배갑상 전문건설공제조합 상임감사가 부산 야권 정치사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용우 선임기자 ywlee@kookje.co.kr

영화에 출연해 유명해졌지만, 사실 배 감사는 부산 야권 정치사(史)의 산증인이자 터줏대감이다. 지금은 본인 말대로 4대 보험 내는 번듯한 직장이 있지만, 부산 야권(현 여권)에서 험난한 정치 역정을 보냈다. 지난 16일 서울 동작구에 있는 조합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특유의 사투리로 거침없이 부산 야권 정치사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냈다.

왜 정치를 했느냐고 묻자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YS(김영삼 전 대통령) 선거 명함을 돌렸다”고 했다. 배 감사는 경남고 출신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등학교 후배고, 김 전 대통령이 각별히 아꼈던 조카가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였다고 했다. 일찍 정치에 눈을 뜰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1985년 12대 총선 당시 신한민주당 문정수 후보를 도우면서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그는 “문 후보가 경남고 선배고, 친구의 매형이었다. 그래서 자원봉사하러 갔다가 문 의원 보좌관을 했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그는 1990년 3당 합당 때 김 전 대통령을 따라가지 않았다. 배 감사는 “1987년 대선 때 YS캠프에서 재야를 담당했다. 그래서 재야 쪽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각하’라는 말도 못 하겠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고생이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3당 합당에 합류하지 않은 것은 역설적으로 그와 노 전 대통령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계기가 됐다. 그와 노 전 대통령은 14대 총선 때 민주당으로 부산 북구을과 동구에 각각 출마해 나란히 낙선했다. 배 감사는 “노 전 대통령을 안 것은 보좌관 때다. 당시 부산 지구당에 법률민원이 들어오면 가장 편하게 상담하러 만난 이가 문재인 변호사였는데, 그 때 노 전 대통령도 같은 방에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이후 규탄대회를 같이 주도했고, 6월항쟁 때는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국민운동본부 부산 본부’를 만들었는데 노 전 대통령이 집행위원장이었고, 나는 상임집행위원으로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배 감사는 “그 때 노 전 대통령이 운동권 이야기와는 다른 말을 해주는 나를 무척 좋아했다”고 했다.

왜 다시 국회의원에 도전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그는 “소위 YS계 로열 패밀리였다. 말하자면 공천에 영향을 미치는 보좌관이었다. 국회의원을 좀 낮춰보는 경향이 있었고, 스타일도 참모형이지 나서는 것은 원래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달픈 선택이었지만 굽히지 않았고, 자신의 허물을 돌려 말하는 법도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노 전 대통령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성도 없는 전문건설조합 감사에 선임된 것은 낙하산 아니냐고 세간의 지적을 건드리자 “공기업과 도교육청에서 감사만 6년을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의 인생에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했다.

박태우 기자 ya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