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행복했던 순간도 잠시, 내가 쓰러지면서 불행이 시작됐다. 뇌출혈. 남편은 전국의 한의원 물리치료실마다 나를 데리고 다녔다.”
교사였던 손충자(55) 씨는 33세 때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는 군대를 다녀온 뒤 간호사를 꿈꾸는 청년이 됐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 손 씨는 ‘ㄱ, ㄴ’부터 다시 배워서 자신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손 씨를 포함한 총 14명 어르신의 자서전이 지난 27일 사하구(구청장 김태석) 평생학습관에서 열린 ‘희희낙락 할매들의 인생이야기’(비문해 자서전 제작) 발간 기념회(사진)에 전시됐다.

자서전 발간은 사하구가 부산시의 ‘2019년 청년 프로그램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 이뤄졌다.

‘희희낙락 할매들의 인생이야기’에는 비문해 어르신 14명과 청년 멘토 11명이 짝을 이뤄 15주간 자서전 쓰기 과정을 운영하고 최종적으로 책을 펴냈다. 청년 멘토는 어르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과정을 도왔고 비문해 어르신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고 동시에 한글 실력을 키웠다.

최고령자인 정영순(83) 어르신은 “6·25전쟁으로 학교에 못 다니다가 어깨 너머로 겨우 받침 없는 한글만 깨쳤다”며 “이제 인생을 정리하는 시점에 자서전을 내서 더욱 의미가 있고 아들과 딸에게 자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하구는 비문해 학습자의 삶을 엮은 연극 ‘할매랑 배우랑’을 제작해 오는 7, 8일 을숙도문화회관 소공연장에 올린다.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