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기업 카페나무 운영 인연
- 협동조합 결성 마을운동 시작
- 동네사람 목소리 반반미디어
- 등굣길 안전강화 변화 이끌어

부산 금정구 금사공단의 전성기였던 1970~1980년대, 인근 해운대구 반송동은 청년 노동자로 북적였다. 원래는 농촌이었지만, 1968년 정책이주지로 지정되며 상전벽해를 이뤘다. 동구 수정동 철거민과 서구 구덕수원지 수재민 등이 마을에 모였다. 빈 땅 위로 작은 집들이 들어섰다. 마을은 금정구 서동과 함께 공단 노동자의 주거지가 됐다. 잘나갈 때는 활기가 가득한 동네였다. 이제는 옛말이다. 몰락한 공단을 뒤로한 수많은 청년이 반송동을 떠났다.

13일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 ‘카페나무’에서 청년가치협동조합 김영준 회장이 청년공동체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그러나 동네 사람의 유대감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청년가치협동조합 김영준(31) 회장이 반송동에 반한 이유다. 그는 올해로 7년 차 ‘반송 청년’이다. 태어나 쭉 자란 곳은 사하구다. 딱히 반송동과는 연이 없던 그가 이곳으로 삶터를 옮긴 건 2014년이다. “2013년 이 동네에 살던 대학 후배가 반송 주민단체에서 송년회를 연다고 해 따라가 봤다. 그날 잔뜩 술을 먹고 다음 날 아침 비몽사몽간 마을에서 장산까지 해를 보러 가는데, 이 동네 주민은 마주치는 사람마다 전부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를 주고받더라. 이렇게 부대끼며 사는 마을도 있구나 싶었다.” 깊은 인상을 받은 차에 마침 자신을 송년회로 부른 그 후배는 김 회장에게 이곳 마을기업 ‘카페 나무’를 운영해보라고 제안했다. 이곳 주민이 운영하는 마을기업이었다. 당시 주민은 청년에게 사업을 맡겨보자는 생각에 청년 운영자를 모집 중이었다. 사회복지학과 졸업생이지만, 복지관에서 일하긴 싫었던 그는 그렇게 반송동과 인연을 맺었다. 마을기업으로 시작한 활동은 2015년 협동조합을 만들면서 본격적인 ‘청년 마을운동’으로 커나갔다.

조합이 생긴 뒤 반송동은 발랄한 청년운동으로 가득한 곳이 됐다. 지난해 반송여중 학생들의 ‘등굣길 항쟁’이 대표적이다. 이곳 학생들의 등굣길은 인근 대학과 주택가 차량의 통행량이 많다. 그런데도 인도가 없거나 매우 좁은 구간이 대부분이다. 학생들은 직접 거리로 나와 안전한 등굣길을 요구했다. 동네 미디어인 ‘반반미디어’의 활약도 컸다. 반반미디어는 조합이 동네 청년과 함께 만드는 마을미디어다. 기사와 영상을 통해 등굣길의 위험성을 알렸다. 결과는 ‘히트’였다. 도달 수가 9000건에 달했다. 그해 12월엔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의 특별상을 수상했다. 심지어 반송여중 한 학생은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연하장도 받았다. “원래 반반미디어는 마을 사람 이야기를 담자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마을의 문제를 알리는 역할도 한다. 주민이 공감할까 의구심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연하장까지 받았다. 확신이 생겼다.”

이 같은 활동은 결국 반송동을 ‘좋은 청년 공동체’로 만드는 게 목표다.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마을 주민의 온정도 결국은 청년이 있어야 이어진다. 이를 위해선 먼저 청년이 마을에 애착을 갖게 해야 한다. “반송동은 주민 공동체가 활발하다. 이유가 있다. 반송에는 인문계고가 없어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 다른 동네 학교로 간다. 이때부터 차별을 받는다. 학교에서 물건이 사라지면 교사가 ‘반송 애들 나와라’고 소리친다든지 말이다. ‘아이들이 이런 일을 겪지 않게 하자’는 뜻에서 ‘희망세상’ 같은 주민단체가 생겼다”고 말한 그는 “반송 청년의 삶을 바꿔줘야 한다. 내가 게으르거나 부모를 잘못 만나 불행한 게 아니라 청년이 행복할 수 없는 구조가 문제라고 말해줘야 한다. 그러면서 반송만의 정, 서로 복닥거리며 사는 동네라는 애착을 심어줘야 한다. 같이 사는 방법을 고민하고, 동네를 떠나지 않더라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방법이 지역 일자리 창출이나 재개발 같은 뻔한 수가 돼선 안 된다. 해답도 ‘반송다워야’ 한다. “내 여자친구는 언니가 2명 있다. 그 언니들은 절대 반송에서 안 나가겠다고 한다. 애 키우기 좋은 동네라는 이유인데, 여기서 살아야 출산을 해도 가족에게 맡길 수 있고, 모두가 복닥거리며 살 수 있다는 거다. 2명 다 자녀 3명씩 키우는 게 목표다. 이곳에서는 서로 정을 주고받으며 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