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종대 향해 출발하자 일제히 환호
- 선실서 선보이는 마술에 연신 집중

“태어나서 배를 처음 타보는 아이들입니다. 저 또한 배를 타보는 건 평생 처음이고요.”

지난 14일 오후 부산 태종대 해상에서 자갈치크루즈를 탄 고려인 자녀와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정빈 기자

인솔자로 참가한 고려인 박진아(62) 씨는 “오늘 자갈치크루즈를 체험한 모든 아이가 재미있다며 즐거워하니 기분이 정말 좋다”며 고마워했다. 선상에서 펼쳐진 깜짝 마술쇼를 보며 손뼉을 열심히 치던 마지나(6) 양에게 ‘오늘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마지나는 러시아말로 “진짜 재밌다 ”고 말하고는 “고맙습니다”며 인사했다.

지난 14일 토요일이었다. 오후 2시가 다가오자 부산 중구 자갈치 신동아시장 곁 자갈치크루즈 선착장은 꼬마 손님들로 복작대기 시작했다.

부산 여행의 명물로 떠오른 자갈치크루즈가 사회적기업 ㈜문화와사람들과 함께 경남 김해 다문화·고려인 가정 어린이를 초청해 무료로 배에 태워주었다. 자갈치크루즈 김동운 대표이사는 “코로나19 탓에 사실 우리도 무척 어렵다. 그런데 다문화·고려인 가정 어린이들이 바다와 크루즈를 체험하도록 돕자는 행사 취지를 듣고는 흔쾌히 힘을 보탰다”고 말했다.

이날 크루즈에 탄 다문화·고려인 아이들은 34명이었다. 다문화 가정 지원기관 관계자 등 성인 8명이 보호자로 동승했다. ㈜문화와사람들 양지현(한국어 강사) 씨는 “김해 서원다문화행복나눔센터와 고려인센터의 협조로 김해 미취학 어린이들(4~7세)이 함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의 고려인 동포가 현지인과 가정을 이룬 뒤 가족이 함께 한국으로 일하러 온 사례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아이들 이름은 박사샤, 고드미뜨리, 김나딸리아 등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한국말을 아직 할 줄 몰라 러시아어로 얘기하고, 부모들은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맞벌이로 일터에 가고, 비자 문제 등으로 이들 고려인 가족을 지원하는 시책에도 한계가 따른다고 한 보호자는 들려줬다.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해맑고 어린이다웠다. 오후 2시 항차 크루즈가 태종대를 향해 출항하자 모두 환호했다. 행사를 지원한 대한예술문화협회 장대한 대표 등이 선실에서 간단한 마술을 선보이자, 즉석에서 고려인 박 씨가 통역했고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우며 집중했다. 어린이들은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바다와 섬과 큰 배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아이스크림과 간식을 먹으며 깔깔 웃고 재잘댔다.

힘든 코로나 상황에서도 어른이 힘을 합쳐 어린이에게 바다를 선물한 날이었다. 90분 동안 이어진 이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방역 지침을 잘 지켰다.

조봉권 선임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