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부산 문화계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부산을 대표하는 축제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30년을 맞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부산콘서트홀’이 오는 6월 개관해 부산도 드디어 클래식 전용 공연장을 갖게 됐다. 문화도시로서 품격을 높일 만한 메가 이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뿐만 아니다.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판 문화예술 행사와 문화공간들도 저마다 의미 있는 한 해를 맞을 채비에 나섰다. 이에 올해 부산 문화계에서 비상을 준비하는 곳을 찾아 소개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
지난달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만난 박광수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29회 BIFF’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그는 올해로 서른 살을 맞은 영화제의 새로운 도약을 자신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 좋은 亞영화·영화인 소개 기능
- OTT세대에 제대로 보여줄 것
- 공석 집행위원장 내달 선임 계획
- 초심으로 신선함 불어넣을 것
부산을 대표하는 축제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올해로 서른 살을 맞는다. 영화제란 단어가 낯설었던 1996년, 사실상 국내 첫 국제 영화제로 시작해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명성의 영화제로 발돋움하기까지 수많은 역경과 난관을 딛고서 이제 30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
지난해 10월 2일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영화인들이 레드카펫을 밟으며 입장하는 모습.
국제신문DB |
올해 BIFF는 30회란 의미 외에도 많은 이슈가 예고되어 있다. 매년 10월에 열리던 행사가 9월로 당겨졌고, 처음으로 경쟁 부문을 도입할 예정이다. 새 집행위원장 선출 등 조직의 변화도 준비 중이다. 지난해 BIFF 구원투수로 나서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끝낸 박광수 이사장을 만나 서른 살 BIFF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확신에 찬 목소리로 30회 BIFF가 새롭게 도약할 것임을 자신했다.
“팬데믹을 거치고 OTT에 익숙해지면서 영화제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품는 분이 많아진 것 같아요. ‘제30회 BIFF’는 영화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행사로 만들 겁니다.”
박 이사장은 올해 행사에 대한 질문에 ‘영화제’ 본연의 역할을 유난히 강조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집에서 세계 각국의 최신작을 볼 수 있게 된 ‘OTT 세대’에게 영화제가 그리 매력적이지 않게 된 현실을 직면해서일까. 그는 영화제의 의미와 역할, 매력을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결국 BIFF의 재도약과 연관된다고 봤다.
아시아 최고 영화를 뽑는 경쟁 부문 신설은 이런 맥락과 닿아 있다. 박 이사장은 지난해 열린 제29회 BIFF 폐막 기자회견에서 ‘경쟁 부문’ 신설을 천명했다. 그동안 BIFF는 아시아 영화 중심의 ‘비경쟁 영화제’를 정체성으로 삼아왔다. 아시아 신인 감독을 발굴하는 ‘뉴 커런츠’ 섹션은 별도로 시상하고 있지만 격려의 의미가 더 컸다. 박 이사장은 “비경쟁보다 경쟁 영화제 방식이 작품을 부각하거나 화제를 모으기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해 신설을 결정했다”고 입을 뗐다. 그는 “지난해 복귀하고 보니 영화제 규모는 커졌지만 시스템은 출범 초기와 비교해 바뀐게 거의 없었다. 그동안 영화제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며 “첫 회 행사부터 아시아 신인을 조명하자는 취지로 ‘뉴 커런츠’ 부문을 시상해 왔지만, 30여 년이 흐른 현재 섹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관객이 대부분이다. 상영작 대부분은 국내 개봉까지 이어지지 못했고, 재능 있는 신인 감독들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도 실패했다. 좋은 아시아 영화와 영화인들을 전 세계에 소개하는 영화제의 기본적인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반성하고 변화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신설할 경쟁 부문은 ‘아시아 프리미어(아시아 최초 상영)’를 출품 기준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 상영)를 원칙으로 하는 칸, 베를린 등 경쟁 영화제에 비해 유연한 규정이다. 박 이사장은 “월드 프리미어만 고집할 경우 다른 영화제에서 소개됐다는 이유만으로 작품을 알릴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좋은 아시아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이기 위해 아시아 프리미어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30회에 걸맞은 다채로운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다. 박 이사장은 “아직 밝힐 수 없지만 사전 이벤트를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영화에 관한 논의가 많이 일어날 수 있도록 영화제 기간 언론과 평단의 비평 참여를 활성화하고자 한다. 지난 행사에서 ‘데일리 뉴스’를 부활시킨 것도 그 계획의 일환”이라고 소개했다.
올해 행사는 9월 17일부터 26일까지 열린다. 추석 연휴와 제106회 전국체육대회 등이 10월에 몰린 탓에 일정이 당겨졌다. 박 이사장은 “이른 개최가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의 경우 무더위가 오래 지속됐기 때문에 이 부분이 가장 우려된다. 늦여름 찾아오는 태풍도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BIFF 조직 정비도 계획하고 있다. 당장 이번 달 BIFF 집행위원장 공모가 예정되어 있다. 2023년 ‘인사 논란’으로 한바탕 내홍을 겪은 이후 BIFF 집행위원장 자리는 계속 공석이다. BIFF 조직위원회는 다음 달로 예정된 정기총회에서 집행위원장을 선임할 계획이다.
박 이사장은 집행위원장 인선을 매듭지은 후 조직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BIFF와 같이 영화제의 모든 프로그래머가 상근으로 근무하는 경우는 드물다. 프로그래머들의 성과와 능력을 수시로 검토해 새로운 인물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영화제를 위한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솔직히 말했다. 이어 “다만 인사권을 갖고 있는 집행위원장이 아직 공석인 만큼, 선임 후 내부에서부터 바꿔나갈 부분들을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이사장은 BIFF 아시아필름마켓 운영위원장(2006~2007년)을 맡은 후 17년 만인 지난해 2월 이사장으로 BIFF에 돌아왔다. 그가 치른 제29회 BIFF는 역대 최고 좌석 점유율(84%)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수장 공백’에 시름하던 영화제의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는 BIFF의 창립 멤버로 영화제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기도 하다. 1996년부터 3년간 BIFF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며 ‘부산프로모션플랜(현 아시아프로젝트마켓)’과 ‘아시아필름마켓(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을 출범시킨 주인공이다. 그는 “취임한 지 10개월이 흐른 지금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영화제에 계속해서 신선함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이대로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BIFF가 아시아 영화 중심 영화제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