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강 낙동강 수필 공모전 최우수상목록으로
낙동강, 그리고 세 번째 걸음마
고창균“엄마, 더이상 못 하겠데이. 내 그냥 이렇게 살란다.”
“아니데이. 경태야. 한 번만 더 해보자. 할 수 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낙동강 하굿둑으로 향해 있는 길을 절룩대는 다리로 걷고 있었다. 을숙도 근처에서만 20년을 살다가 더 넓은 세상을 동경하며 서울로 향했던 나는 정확히 7년 만에 낙동강 모래톱으로 돌아왔다. 퇴근길 마주 오던 차와 정면 추돌하여 피투성이가 된 채로 응급실로 실려갔고, 7번의 전신마취 수술 끝에 절룩대는 다리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경태야. 엄마다. 눈 좀 떠 봐라. 정신이 좀 드나?”
“엄마. 여기가 어뎁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치료나 열심히 받자.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
삶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소중한 존재였던 막내아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당신의 눈앞에 나타났음에도 엄마는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하며 너그러이 받아주었다. 그리고 억새풀이 우거진 낙동강 하구 모래톱에서 첫 번째 걸음마를 배워나갔던 것처럼, 엄마 손을 잡고 두 번째 걸음마를 내딛게 되었다. 하굿둑을 몇 번씩이나 건너다녀도 끄떡없던 시절도 있었는데,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한 발자국씩 내디딜 때마다 온몸이 휘청거렸지만 엄마 품이 있어 쓰러지지 않았고 계절별로 달라지는 낙동강 건너편 하늘빛과 물 위에서 서서히 미끄러져 가는 쇠오리가 있어 지루함을 덜 수 있었다. 그렇게 낙동강은 나의 두 번째 걸음마를 위해 자신의 품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피투성이 아들을 따뜻한 품으로 받아 안은 엄마처럼, 더 넓은 세상으로 향했다가 절름발이 신세가 되어 돌아온 나를 위해 낙동강은 자신의 드넓은 갈대밭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처음에는 하굿둑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검푸른 물빛이 냉혹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강기슭 돌 틈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들이 나를 붙잡아 주었고, 강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는 어릴 적 추억들이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엄마, 강하구두가 뭐야?”
“강하구두? 강하구두가 뭔데?”
“저기 다리에서 붙어 있었어. ‘낙동 강하구두’라고.”
“아. 하구둑. 바닷물이 낙동강으로 올라오는 걸 막아주는 둑이야. 둑.”
아직 한글을 채 떼지도 못하고 띄어쓰기조차 서툴렀을 때 나는 ‘낙동강 하굿둑’이라는 발음이 어려워 ‘강하구두’라고 부르곤 했었다. ‘강하구두’라고 부를 무렵에는 낙동강 하구 강변에 산책로도 변변치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꼬맹이들에게는 좋은 놀이터였다.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 철새들과,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왠지 모를 마음속 울렁거림을 더해주었다. 시간이 흘러 집 옆에 있는 큰 다리가 ‘강하구두’가 아니라 ‘낙동강 하굿둑’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난 후에도 강 건너의 울렁거림이 그리워 하굿둑을 숱하게 건너다녔다.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가을소풍은 하굿둑을 건너 을숙도에 가는 코스였기 때문에 질릴 법도 했지만, 낙동강 하구의 모래톱과 갈대밭은 삶이 힘겨울 때마다 기댈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하굿둑을 ‘강하구두’라고 부르던 때의 추억부터 떠올리다 보면 나의 두 번째 걸음마도 조금씩 발전하고 있었다. 하굿둑 초입의 해태상까지 가는 것조차 버거웠다가도 어느새 하굿둑 1번 수문(水門)까지 이르렀고, 며칠 후엔 2번 수문까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늘려 11번 수문까지 이를 수 있게 되었고, 그때 비로소 나의 두 번째 걸음마는 완성될 수 있었다. 엄마 손을 잡고 첫 번째 걸음마를 배울 때에도 그랬던 것처럼, 두 번째 걸음마를 배울 때에도 낙동강은 나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용기와 넓은 세상을 향해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협곡열차에 몸을 실었다. 한 사람의 손을 꼭 잡고 올라탄 열차는 태백산 절경들 사이로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을 지나 어느새 철암역에 이르렀다. 철암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3개의 조그만 연못이 있었다. 고즈넉한 마을에 자리잡은 황지연못이었다.
‘洛東江 千三百里 예서부터 시작되다’
천삼백리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연못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손을 맞잡은 그 사람과 평생을 약속하였다. 예전만큼 빠르게 걸을 수 없어 두려움도 있었지만, 낙동강 모래톱에서 엄마 손을 잡고 첫 번째, 두 번째 걸음마를 배웠듯이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있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삶이 낙동강 하구에서 황지연못까지 거슬러 온 과정과도 같아 모든 것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황지연못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굽이굽이 흘러 더 넓은 바다로 향하듯이, 새롭게 시작하는 내 삶도 더 큰 희망을 향해 한 발짝 내디딜 수 있었다. 낙동강과 함께한 세 번째 걸음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