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강 낙동강 수필 공모전 최우수상목록으로
천사를 부탁해요
김대영아내를 처음 만난 곳은 지역의 아동센터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였다. 고등학생이었던 우리는 주린 배를 부여잡고 도시락을 받기 위해 줄을 서다가 자주 마주치곤 했다. 그래도 눈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밥을 얻어먹으러 다녀야 하는 각자의 형편이 너무 무거워 다른 것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매일 밤 술에 취한 아버지가 휘두르는 혹독한 매질을 견디다 못한 어머니께서 한밤중에 사라지시고, 아버지마저 자취를 감춘 후 나는 혼자가 되었다. 새벽엔 신문이나 우유를 배달하고, 학교가 끝나면 택배 상하차 일을 했지만 단칸방 월세를 내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아내는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어린 동생과 함께 친척집을 전전하는 처지였다. 툭하면 트집을 잡아 밥을 주지 않는 어른들의 횡포에 늘 배가 고팠던 아내 역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동네에 사는 우리는 어쩌다 일일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만나기도 했다.
전혀 아는 척하지 않았지만 스치는 순간에도 서로의 애달픈 처지를 알 수 있었다. 다음 끼니에 대한 두려움과 철저히 혼자라는 고독은 말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 마음처럼 아내의 마음이 가깝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럽게 교제를 하게 되었다.
안간힘을 다해 동생이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뒷바라지를 한 후에야 아내는 나와의 결혼을 결심했다. 주택 마당 한 켠에 자리한 창고 같은 방에 마련한 옹색한 신혼살림이었지만 서로를 마주하면 늘 웃음이 나왔다. 지난 시간이 안쓰럽고 애달파 서로 사랑만큼은 고프지 않게 듬뿍 주었다.
아내가 조심스럽게 아이를 가졌다고 이야기하던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입덧을 하는 아내에게 뭘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 하면서도 발 밑이 붕붕 뜨는 느낌이었다. 가슴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기쁨에 우리 부부는 매일 싱글벙글이었다.
손꼽아 해산 날을 기다리던 어느 날, 아내에게 진통이 찾아왔다.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아내는 어서 아이를 만나고 싶다며 들뜬 목소리를 냈다. 바람같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분만실 앞에서 검사를 하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약한 아이가 진통을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아내는 제발 아이를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의사선생님에게 매달렸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지독한 침묵 속에서 아내는 혼절하고 말았다. 병실에서 깨어난 아내는 허공에 손을 내저으며 아이의 태명을 불렀다. 그 간절한 손짓에 나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퇴원을 한 아내는 집안 곳곳에 쌓여있는 아기용품을 보고 과호흡 발작을 일으켰다. 혹시나 유모차 바퀴 비슷한 것만 보여도 숨을 쉬지 못하게 되자, 점차 밖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늘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바깥 일 하는 것을 좋아하던 아내는 두문불출하며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숨이 답답하다며 가슴을 치는 아내를 보다못해 사람이 없는 밤 시간에 아내를 데리고 강정보로 갔다. 가로등 불빛을 하얗게 반사하며 쉴새없이 출렁이는 강물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내가 오랜만에 큰 숨을 내쉬었다.
반짝이는 강물을 따라 타박타박 걷는 아내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우리는 매일 밤 강변을 걸었다. 비나 눈이 와도 거르지 않았다. 아내는 강물이 매일 같은 모습인 것이 좋다고 했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날씨가 어떻든 그저 같은 길을 따라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아내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렇게 강과 함께 꼬박 한 해를 보낸 아내가 내게 태교일기를 내밀었다. 열 달 동안 우리 부부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아이를 기다린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책이었다. 아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달라지지 않는 강물을 보며 여전히 우리가 아이의 부모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아내의 말이 맞았다. 아이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지만 우리가 아이의 부모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아이가 곁에 있든 없든 기다리고 사랑하는 그 마음은 그대로였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찾아가면 늘 그 자리를 흐르고 있는 강물처럼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아내는 조금씩 달라졌다. 여전히 아이의 엄마인 것을 깨달았으니 제대로 살고 싶다고 했다. 새모이만큼 먹던 식사량도 늘었고, 상담도 받았다. 무엇보다 아내는 강가를 걸을 때마다 강물을 향해 조금씩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낙동강은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묵묵히 흘렀다. 먼 옛날부터 사람들의 생명수가 되어주던 그 강이 여전히 같은 길을 흐르며 아내의 마음을 치유하는 모습은 무척 경이로웠다. 유구한 시간 동안 강가로 사람들이 모인 것은 비단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마음을 보듬고 살아갈 힘을 주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여전히 강가로 밤산책을 간다. 아내가 조용조용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면, 같이 입을 모아 먼저 떠난 아이를 강에게 부탁한다. 우리에게 그랬듯이 아이의 마음속에도 강물이 따뜻하게 흐르기를, 그게 아이에게도 힘이 되기를 바라며 힘주어 말한다.
“천사를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