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생명의 강 낙동강 수필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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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오리알

최영준

‘낙동강 오리알’.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홀로 소외되어 처량하게 된 신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 즈음은 들어보았을 표현일 것이다. 작년 한 해를 돌이켜보니 나 역시 ‘낙동강 오리알’과 다름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한 해, 전국을 혼란케 한 역병에 더불어 나 자신을 혼란케 한 힘겨운 학교생활. 지금 되돌아보니 그저 헛웃음만 허허, 나올 뿐이지만 정말이지 그때는 정말 힘든 나날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역병은 국가를 삼켜 군사학교에 재학하는 내가 외출, 외박을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고 친구들의 놀림은 그런 나를 더 폐쇄적이고 답답하게 만들었다. 다음날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워 매일매일 잠 못 이루며 힘든 학교생활을 보내던 어느 날, 나는 인터넷 기사에서 ‘낙동강 오리알’이라는 표현을 보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책이나 신문을 읽는 것을 즐긴 탓에 많이 보아왔던 표현이었건만 그때는 내게 무언가 알 수 없는 울림을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내 처량했던 신세가 그런 표현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었으리라. 낙동강에 떠다니는 오리알이라. 나는 그날 밤 침대에 누워 깊은 생각에 빠졌었다. 정처 없이 홀로 떠도는 오리알을 품어주고, 물길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낙동강은 어떤 곳일까? 그동안 교과서와 인터넷 등을 통해서만 낙동강을 접해왔을 뿐, 실제로 가본 적은 없었기에 그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역병으로 인해 출타가 제한된 내 사정상 직접 찾아가 볼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급한 대로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들을 몇 점 봐보고자 했다. 호기심을 참을 수 없는 성격이기에, 늦은 밤이었지만 남들 몰래 노트북을 켜서 인터넷에 접속했다. 검색창에 낙동강을 입력한 뒤 처음 마주한 것은, 산과 평야 사이로 흐르고 있는 드넓은 물줄기였다. 동네 하천만 보며 자란 촌뜨기인 내가 보기에는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가 아닐 수 없었다. 추가로 찾아본 정보는 나를 더 놀랍게 만들었다. 그렇게 드넓은 물줄기가 광활한 영남 땅을 가로지를 만큼 길이도 길다니. 나는 낙동강 사진 한 점 한 점을 보며 그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고 있었다.

다음날 학과장에 내려가서도 낙동강의 잔상은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평소라면 귀 기울여 들었을 역사 선생님의 수업도, 나를 놀려대는 친구들의 수군거림도 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누군가는 기억을 과장한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때의 기억은 너무나도 생생하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온종일 모든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낙동강만이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을 뿐이었다.

일과가 종료되고 난 저녁, 나는 어김없이 노트북을 켜서 낙동강을 다시금 검색해보았다. 분명히 지난 새벽에 한 번 보았던 사진들이었지만, 보면 볼수록 내 마음을 울리고 있었다. 고된 학교생활과 친구들의 놀림에 지친 내 마음이 낙동강 사진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치유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순간 생각했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오리알에게 낙동강이라는 든든한 존재가 있는 것처럼, 내 곁에도 든든한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갈 곳 없이 방황하는 오리알을 품어주고 물길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낙동강 같은 존재가 나에게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뇌리에 ‘상담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그때까지 나 혼자만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뿐,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 혼자의 힘으로 버티는 것은 한계라고 생각했기에, 나를 품어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해졌기에, 상담 선생님을 찾아뵙기로 결심했다.

나는 다음날 오전에 담임선생님 조회가 끝나자마자 학과장 2층에 있는 상담실로 찾아가 상담 예약을 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동아리 시간에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나는 그날 상담시간에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으며 상담 선생님과 2시간여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담을 통해 마음속 응어리를 푼 듯한 느낌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고, 앞으로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상담이 끝나고 생활관으로 돌아온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길을 잃은 오리알에게 낙동강이란 존재가 있는 것처럼, 내게도 상담 선생님이라는 든든한 존재가 생긴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지속적인 상담과 해결 과정을 통해 친구들과의 오해를 풀 수 있었고, 지금은 친구들의 놀림과 괴롭힘이 사라진 채 언제 그랬냐는 듯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다. 요즘은 학교생활이 하루하루 너무 즐거울 정도이다.

낙동강을 알지 못했다면, 상담실에 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힘든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리알을 품어주는 낙동강을 알았기에, 나를 품어줄 누군가를 찾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친구들과의 문제도 원만히 해결될 수 있었다. 나를 다시 힘내게 해준 희망의 낙동강,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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