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1월까지 전 세계 신규선박 수주 현황을 볼 때, 두 가지 단위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환산톤수(CGT)이고, 다른 하나는 척수다. 먼저 환산톤수로 보면 중국이 2104만 CGT고 한국은 950만CGT로 나온다. 그런데 척수 기준으로 보면 중국은 969척, 한국은 199척을 수주했다. 이는 우리의 앞선 조선기술력을 바탕으로 LNG운반선을 비롯한 친환경선박, 즉 높은 기술력을 앞세운 고부가가치 첨단선박 위주로 수주를 했기 때문이다. 대형조선소는 모두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대형조선소의 분위기와는 달리 중형조선소와 조선기자재업계는 아직도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3년 해운분야의 빅 이슈는 국제해사기구(IMO) MEPC(해양환경보호위원회) 제 80차 회의에서 기존 2050년 해운분야 온실가스(GHG) 배출 감축 목표를 Net-zero로 상향 조정한 것이었다. 2030년까지 GHG를 2008년 대비 20% 이상(30%까지 노력), 2040년까지는 70% 이상(80%까지 노력) 감축하고, 2050년에는 GHG를 100% 감축하는 것이 목표로 설정됐다.

IMO는 단기적인 온실가스 감축조치도 발효했는데, 현재 운항되는 기존선박에도 2019년 대비 5%를 의무적으로 감축해야 하고, 2024년부터 2026년까지 매년 2%씩 추가로 줄여야 한다. 이 또한 MEPC 제 80차의 강화된 목표 설정으로, CII 등급제의 연간 감축 목표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해운선사들은 불확실한 중장기 조치의 대응보다는 당장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는 단기 조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풍력에 의한 보조추진시스템에 대한 관심도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이 장치들을 기존선박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친환경 기자재의 개발 및 생산뿐만 아니라 개조엔지니어링 기술 및 인프라 재정비 등 생태계가 마련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친환경선박 기술 확보와 글로벌 환경규제 대응을 위해 ‘환경친화적 선박의 개발 및 보급촉진에 관한 법률(친환경선박법)’을 제정했고, 5년 마다 기본계획과 매년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그러나 친환경선박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첫 징검다리인 수리개조 산업에 대한 대책은 부족하다. 전 세계 선박 수리개조 산업시장이 2027년까지 약 110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형조선소는 기자재 설치 및 선박 수리개조에 대한 준비보다는 신조 선박건조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부산의 향토기업이자 조선산업 터줏대감인 대선조선은 지난 11월 22일 워크아웃을 개시했고 올해 9월까지 케이조선은 107억 원, HJ중공업은 1272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대형조선소에 비해 중형조선소는 중국과의 기술적 격차가 크지 않기에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 인력 부족과 높은 원자재 가격 등으로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 우리 기자재기업의 제품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었지만, 국내에서 설치할 수 있는 중형조선소가 없어 중국과 싱가포르 등 해외로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정부의 기술개발지원 프로그램으로 경남테크노파크가 중심이 되어 ‘친환경 선박 수리 및 개조 플랫폼구축’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하지만 선박의 운항 효율과 에너지 절감 기술을 고려한 수리 및 개조기술 확보와 인프라 구축 등과는 거리가 있다.

현재 중형조선소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으로는 친환경선박의 개조를 위한 인프라를 강화하고, 수리개조 엔지니어링 능력과 인프라 활용 능력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정책 마련과 지원이 시급하다. 저렴한 인건비로 중국이 독점하고 있는 중형조선소 및 수리개조 분야를 다시 우리나라로 회귀시키기 위해 산·학·관·연 모두 합심해야 할 시점이다. 중형조선소의 재활전략을 선박 수리개조로 전환하는 것이 재도약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는 중형조선산업과 기자재산업이 상생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