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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국민의힘 김상욱 의원이 묘역에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애국가가 흘러나왔습니다. 학살의 신호. 계엄군이 쏜 총에 시민은 하나둘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산 채로 잡혀 두들겨 맞고, 군홧발에 밟히기도 했죠. 계엄군 총 끝에 달린 대검은 시민을 난자했습니다. 한쪽에선 시신을 손수레에 쌓아 급히 옮기며 통곡합니다. 죽어가던 한 시민은 확성기를 입에 대고 소리 질렀습니다. “제발 우리를 잊지 마세요!”
역사책에서 절대 지울 수 없는 45년 전 광주의 모습입니다. 광주, 그리고 금남로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입니다. 시민이 불법 계엄에 피 흘려 저항한 곳이죠. 말을 바꿔, 계엄군이 시민을 학살한 현장이기도 합니다. 금남로에 피맺힌 한은 씻을 수 없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이 올해 45주년을 맞는 것처럼,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도 45년 만이었습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고, 5·18민주화운동을 불렀습니다. 45년 전 금남로에서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를 잃은 시민은 아마도 이번 비상계엄에 소스라쳤을 겁니다.
광주, 그리고 금남로는 이 모든 것이 응축된 공간입니다. 그런데 지난 15일 금남로에서 계엄을 옹호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습니다. 보수 성향 개신교 단체 세이브코리아가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국가비상기도회’를 진행한 겁니다. 집회 참가자는 12·3비상계엄을 ‘계몽령’이라 칭하면서 “계몽령을 통해서 국민을 일깨워준 윤 대통령을 석방하라”고 외쳤습니다. 이들은 마치 ‘점령군’인 양 의기양양했습니다.
광주시민은 “민주화 역사의 현장을 지키지 못했다”며 참담해했죠. 강기정 광주시장은 “쿠데타 세력을 옹호하고 헌법을 부정하는 세력에 내어줄 공간은 광주에 없다”고 맞섰습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도 “불의한 세력이 민주의 성지 광주에 발을 들이려고 한다. 묵과할 수 없다”고 발끈했습니다. 계엄에 짓밟힌 땅에서 계엄을 옹호하는 집회가 열렸으니, 당연히 그럴 만합니다.
집회의 자유는 반드시 보장돼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 금남로 탄핵 반대 집회는 ‘선’을 넘었습니다. 시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고, 다분히 폭력적이었습니다. 물리적 폭력만 폭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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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상욱 의원이 지난해 12월 14일 국회 본청 앞에서 동료 의원들에게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 의원은 자신이 반대표를 던진 이유를 설명한 후 다시 말을 보탰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더 건강해져야 합니다. 정치가 더 건강해져야 합니다. 진영 논리와 보복 정치에 빠져서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서로를 악마화하고, 대화하지 않고 상대방이 집권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그렇게 적대시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맞지 않습니다.”
그가 강조한 보수의 가치는 ‘정의로움’ ‘따뜻함’ ‘헌법 수호’ ‘개방과 포용’입니다. 김 의원은 결국 같은 당 의원들의 반대에도 광주를 방문해 스스로 말했던 보수의 가치를 실현했습니다.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국화 1500송이를 헌화했습니다. 그리고는 “역사적 아픔의 현장이자 민주주의의 상징인 광주 금남로에서 탄핵 반대, 계엄 찬성 집회가 열려 송구하다”며 “12·3비상계엄 당일부터 광주항쟁과 같이 시민이 피를 흘리는 일은 절대 없게 하고 5·18 영령들께 송구하다는 인사를 꼭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러던 차에 지난 15일 광주에서의 계엄 찬성 집회를 보고 선을 넘는 일이라고 판단해 더 서둘렀다”고 했습니다.
김 의원은 특히 “광주는 불법 비상계엄과 독재에 맞서 시민께서 피 흘리며 항쟁하고 학살이 은폐됐던 곳인데 그런 곳에서 계엄군이 ‘십자군’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라며 “민주주의 본질에 대한 모욕이자 훼손”이라고 질타했죠. “보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주주의, 법치, 헌정 질서 수호 가치를 기준으로 볼 때 더 분개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막지는 못하겠지만 행위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우리 국회에 이런 보수주의자가 몇 명만 더 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를 죽여야만 살 수 있는 것처럼, 상대가 집권하면 하루아침에 세상이 망할 것처럼, 그렇게 싸움질만 하는 국회에 포용과 협치기 조금씩 생겨나지 않을까요. 40대 젊은 의원, 보수주의자 김상욱이 역설하는 보수의 가치가 참으로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부디 그 신념, 변치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