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헌법재판관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11차 변론에 입장하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너도나도 ‘법치’를 말했습니다. ‘헌법 수호’를 내세웠습니다. 12·3비상계엄을 선포한 쪽도, 이를 해제하고 대통령을 탄핵 소추한 쪽도 법치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일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습니다. 이 나라에 법치가 무너져 사법·행정 시스템이 마비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의 우려가 커 비상계엄이 불가피하다고 선언했죠. 단호하게 법치를 앞세웠습니다.

윤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을 가결하고, 그를 법정에 세운 근거도 법치입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국회의장과 야당 의원들은 계엄군을 뚫고 국회로 들어가 본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러고는 “불법에 헌법적 절차로 대응하겠다”며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법적 절차대로’ 통과시켰습니다. 여당 대표마저 “위법·위헌적 비상계엄을 국민과 함께 막아내겠다”고 했습니다. 불법을 법치로 무력화하겠다는 겁니다.

지난 25일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 심판 11차 변론에서 최종 의견 진술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연합뉴스

이후 나라가 둘로 쩍 갈라졌습니다. 한쪽은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며 응원봉을 들었고, 다른 한쪽은 탄핵에 반대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었죠. 윤 대통령은 물론 정치권은 민심이 쪼개지는 것쯤 신경 쓰지 않는 눈치입니다. 외려 각 진영을 선동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을 습격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법치를 바로 세우겠다”던 외침은 공허해졌습니다. 양쪽이 경전으로 받든 헌법 정신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양쪽의 극심한 대립 속에 지난 25일 윤 대통령 탄핵 심판 변론이 종결됐습니다. 석 달여 멀고 험난한 길을 돌아서 다다른 지점입니다. 이제 헌법재판관 평의와 평결, 그리고 선고만 남겨뒀습니다. 오로지 헌법재판소의 시간, 법치의 시간이 온 겁니다. 더 돌이킬 시간도, 새롭게 추가할 시간도 없습니다. 양쪽 다 차분히 기다리고, 겸허히 승복할 일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탄핵 심판 변론이 완전히 종결된 다음 날에도 혼란은 여전합니다. 아수라장입니다. 우선 정치권. 26일 여당과 대통령실은 전날 윤 대통령이 최후 변론에서 밝힌 ‘직무 복귀를 전제로 한 개헌’을 방패로 탄핵 반대를 다시 주장합니다. “대통령의 진정성 있는 말씀” “상당한 공감” “개헌을 통한 국가 대개조” 등을 거론하며 헌재가 탄핵안을 기각 또는 각하해야 한다고 압박합니다. 야당의 언어도 더 거칠어졌습니다. “거짓·궤변” “구제 불능” “끝까지 사죄도 승복도 없어” “파렴치한 거짓말로 심판정 더럽혀” 등의 발언으로 맞섭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관 ‘8 대 0’ 만장일치로 윤 대통령을 파면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같은 날 대학가도 탄핵 찬반 집회로 얼룩졌습니다. 일부 대학에서는 양쪽이 뒤엉켜 서로의 현수막과 피켓을 막으며 충돌했습니다. 부산 대학가에서는 27일부터 줄줄이 탄핵 정국을 둘러싼 시국선언과 집회가 열립니다. 각 대학은 골머리를 앓습니다. 학생뿐 아니라 정치·사회단체 인파, 유튜버들까지 몰릴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해 이번 주말에도 평소처럼 대규모 탄핵 찬반 집회가 전국 곳곳에서 예고됐습니다.

지난 25일 정청래 국회 탄핵소추단장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11차 변론에서 최종 의견 진술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연합뉴스

앞서 언급했듯, 이젠 법치의 시간입니다. 헌재에 맡겨야 할 때입니다. 모든 변론이 종결된 마당에 양쪽의 날 선 여론전은 민심만 쪼갤 뿐 헌재의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만에 하나 헌재가 여론에 휘둘린다면, 그건 법치가 아니죠. 법치를 말하던 이들이 그런 걸 요구하거나 바라서도 안 되겠죠. 그래서 더 돌이킬 시간도, 새롭게 추가할 시간도 없다는 겁니다.

그동안 양쪽 다 그토록 주창해온 법치를 이제 행동으로 증명해야겠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세상에 하나뿐인데 국민이 이렇게 갈라져서야, 누가 떳떳하게 법치를 얘기할 수 있을까요. 법조계 최고 위치의 헌법재판관은 흔히 국민 기본권 수호와 최후의 헌법적 판단을 내리는 ‘현자’로 불립니다. 헌법재판관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이들이 내릴 결정을 예단해 반발하고 비난한다면, 선고 이후 저항할 모략이나 꾸민다면, 대한민국 법치는 꽤 오랜 시간 회복되지 않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