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경북 안동시 남선면 인근 야산으로 불이 번지고 있다. 연합뉴스

어제(26일)는 굵직굵직한 뉴스가 제법 많았습니다.

법원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판결했습니다. 여야, 보혁 간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정치권과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앞으로도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됩니다.

헌법재판소는 여전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일을 지정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야당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피청구인 윤석열 탄핵 심판 선고기일 신속 지정 촉구 결의안’을 단독으로 처리했습니다. 여야가 또 한판 붙었습니다. 정국이 매우 어지럽습니다.

하지만 미친 듯 날뛰는 ‘괴물 산물’에 견주면 다른 모든 뉴스가 다소 가벼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지난 21일 경남 산청, 22일 경북 의성과 울산 울주 등지에서 시작된 산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조대원과 고령 주민 사망자가 속출합니다. 26일 오후까지 인명 피해는 사망 26명, 중경상 26명으로 잠정 집계됐습니다. 이재민도 2만7000여 명에 달합니다.

천년고찰 고운사가 흔적도 없이 불탔습니다. 지리산 국립공원 안으로도 불길이 번졌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로도 화마가 근접했습니다. 안동에서는 전 시민에게 대피령이 떨어졌습니다. 교도소 담장에까지 불이 붙어 수용자가 대거 이감됐습니다. 경북 의성에서 산불을 진화하던 헬기가 추락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26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 건물들이 산불에 모두 타 흔적만 남아 있다. 연합뉴스

‘아비규환’입니다. 이 단어가 이렇게 적확하게 맞아떨어진 적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아비규환은 불교에서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을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한 겁 동안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 펄펄 끓는 가마솥이나 뜨거운 불 속에 던져져 울부짖는 지옥을 말합니다. 기독교의 지옥도 다르지 않습니다.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끝없이 벌받는 곳. 지금 괴물 산불이 벌겋게 집어삼킨 우리나라가 다름 아닌 지옥입니다. 이 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마저 감돕니다.

27일 예보된 비가 불타는 국토를 넉넉히 적셔줄 수 있을까요. 기대와 달리 강수량이 많지 않으리라고 예상돼 걱정입니다. 국민 모두 한마음으로 어서 이 지옥 같은 불덩이가 차갑게 식기를 바랄 뿐입니다. 말 같지도 않은 음모론, 황당한 궤변은 그쳐야겠습니다.

기후 위기로 우리는 점점 봄철 산불에 취약해집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말처럼 역대 최악의 산불이며, 모든 예측을 뛰어넘는 양상입니다. 고온·건조한 봄날이 많아지고, 메마른 산과 들은 대형 화재의 ‘연료’가 됩니다. 그러나 이런 환경 변화에도 우리의 대응 방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얼른 불길을 꺼뜨리고 차분히 되짚어야겠습니다. 산에서의 불법 소각 등 행위도 엄정히 단속해야 합니다. 산을 지키는 것이 바로 우리의 생명과 유산을 보호하는 길입니다.

사람과 자원의 지역 간 불균형 문제도 진지하게 돌이켜볼 때입니다. 이번 산불 희생자 대부분이 시골 마을 60, 70대 어르신입니다. 움직임이 불편한 고령자들이 사회 안전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 집중된 것이 바람직한지, 질병과 재난은 왜 자꾸 ‘약자’를 먼저 공격하는지, 왜 우리는 매번 사람이 죽고 난 뒤에야 약방문을 쓰는지… 곰곰이 돌이켜 봐야겠습니다.

우선, 제발 한 시라도 빠르게 화마가 물러가기를 바랍니다. 희생자 모두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