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협상제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주들이 과거에는 용도 변경이 불가능했던 땅을 들고와 “현금 내놓을 테니 아파트 지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해안가에 수 천세대의 아파트 단지를 추진 중인 민간사업자도 있습니다. 사전협상제의 명암을 뉴스레터 ‘뭐라노’가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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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대 옛 한진중공업 부지. 이세영PD |
부산 사하구 다대동 옛 한진중공업(17만8757㎡) 일대. 바다는 물론 걷기 명소인 두송반도가 한 눈에 보입니다. 2017년 이곳을 매입한 민간시행사는 최근 부산시에 사전협상을 신청했습니다. 준공업지역인 토지 용도를 준주거·일반상업지역으로 바꿔주면 1300억 원 상당의 공공기여를 한다는 제안이 포함돼 있습니다. 시행사의 바람대로 토지용도가 바뀌면 약 4000세대의 공동주택과 함께 상업·업무시설 건축이 가능합니다. 반면 다대동 주민들은 공기처럼 누리던 바다 조망권을 잃을 수 있습니다.
[최이서 시민] “저희 집 베란다에서 보면 뷰가 되게 예쁜데 거기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면 가려집니다. 그것(바다뷰) 때문에 이쪽으로 이사를 온 거거든요. (아파트단지가 생기면) 조금 불편할 것 같아요.”
시민사회에서는 “규제를 완화해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도입된 사전협상제가 오히려 특혜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 “처음에 되게 좋게 시작했던 사전협상제도가 민간업자들에 의해서 되게 악용되고 있고, 특히 부산이 악용되는 대표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서 심각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부산에는 사전협상제를 도입하지 않는 것을 제안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상황입니다.”
부산 기장군 일광면 옛 한국유리 터 14만8000㎡는 한진CY부지 다음으로 속도가 빠른 곳입니다. 한 지역 건설사는 지난 2017년 옛 한국유리 부지를 매입한 후 2018년 시에 처음으로 사전협상 대상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토지 용도를 공업에서 준주거로 바꾸고 아파트와 숙박·해양문화·관광시설을 건립하는 대신 공공기여금을 내겠다는 안이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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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장 일광면 옛 한국유리 부지. 김채호 기자 |
[정주철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공공성을 위한 용도 변경이 사전 협상제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공공성이라는 게 무엇인가가 가장 중요한데 ‘돈을 얼마만큼 회수하겠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다 보면 특혜 시비에 휘말리게 됩니다.”
건설사 측은 “아파트 규모를 줄이는 하편 국제공모를 통해 사업 계획을 보완했다. 부산시의 적극적인 결정을 기대한다”는 입장. 부산시는 사전협상 대상이 될지 여부를 검토하는 단계라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이곳에 초고층 건물이 추진되면 ‘바다 경관을 사유화한다’는 논란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부산 남구 우암동 옛 부산외국어대 땅을 사들인 민간사업자도 최근 1359세대의 아파트 건설 계획을 부산시에 제출했습니다. 이곳은 13만㎡ 중 67%가 자연녹지여서 부산시 동의 없이는 고층건물을 올릴 수 없습니다. 만약 토지 용도변경이 되면 민간사업자는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됩니다. 이곳을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공영개발해 ‘신산업 청년창업기지’로 육성하겠다던 부산시 계획도 사실상 무산됐습니다.
[이용형 부산시의원] “공공기관이 들어와야 지역 경기도 활성화되고 지역 발전이 균형 발전이 이루어짐으로 인해서 부산시의 균형발전에도 부응할 수 있는 이런 공영개발이 추진이 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2030 부산도시기본계획’에 반영된 사전협상 대상지는 모두 10곳. 부산시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면적이 1만 ㎡ 이상(현재는 5000㎡ 이상)이면서 공공기관이나 기업이 이전한 유휴부지를 사전협상 대상지를 지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동부산권에는 ▷해운대구 한진CY ▷태광산업이 소유한 금정·해운대구 부지 ▷한국유리 ▷옛 부산외국어대까지 4곳입니다. 서부산권은 옛 한진중공업과 ▷북구 금곡동 조달청사 ▷사상구 부산구치소·엄궁농산물도매시장 ▷강서구 강동동 원예시험장을 포함해 5곳입니다. 원도심에는 동구 좌천동 자성대부두가 있습니다.
이 중 부산항 북항 2단계 재개발사업에 포함된 자성대부두를 포함해 5곳은 사업 방향이 바뀌는 등 사전협상제를 통한 사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원예시험장 부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공주택 건립 추진을 희망했으나 아직은 실무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개발 방향을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정주철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사전협상제라는 것이 사전에 민간과 공공이 서로 협의한다는 개념입니다. 협의해서 개발 계획을 수립해야 되는데 개발 계획이 강력하려면 사업이 시작되기 전 공공에서 이미 지역이 어떻게 발전해야 되는지 대한 큰 그림이 있어야 합니다”
[부산시 관계자] “우리 시에서는 빠른 시일 내에 발전 방향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민간에게 제시하고 거기에 맞는 개발 계획안을 민간 사업자가 제출하면 전문가나 위원회 등을 통해서 검토를 할 예정이고요”
부산 사전협상 대상지 개발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난개발이나 특혜성 행정이 이뤄지지 않는지 ‘뭐라노’가 계속 지켜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