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방음터널 화재… 부산도 안전하지 않다

화재에 취약한 ‘열가소성 플라스틱’ 방음터널 건축에 쓰여… 부산도 예외 아냐

방음터널 안전지대 아닌 부산… 방음터널 총 4개지만 소방시설 제대로 설치 안 돼

허시언 기자 hsiun@kookje.co.kr  |  입력 : 2023-01-08 21:17:04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차를 사기로 마음먹기 시작한 이후부터 차를 운전하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고를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라노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그런 것 같아요. 라노는 최근 일어난 방음터널 화재 사건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무섭게 타오르는 불길과 녹아내리는 천장을 보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 알아봤습니다.
지난달 29일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부근 방음터널 구간에서 화재가 발생해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오후 1시49분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인근 방음터널 구간에서 불이 났습니다. 이 불로 5명이 숨지고 41명이 다쳤죠.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와 폐기물 운반용 트럭 간에 추돌사고가 발생하면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트럭에서 발생한 불이 방음터널로 옮겨붙으면서 순식간에 확산했습니다. 소방당국은 화재 규모가 크다고 판단해 신고 접수 20여 분만인 오후 2시11분 대응 1단계를 발령했습니다. 이어 10여 분 뒤인 오후 2시22분 경보령을 대응 2단계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불은 화재가 난 지 2시간여 만인 오후 4시12분 완전히 진화할 수 있었습니다.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에서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열가소성 플라스틱’이 지목됐습니다. 열가소성 플라스틱이란 열을 가했을 때 변형이 생길 수 있는 플라스틱을 말합니다. 높은 열을 가하면 녹고, 열을 식히면 고체로 되돌아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변형이 쉽고, 무게가 가볍고,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건축물에 잘 쓰입니다. 잘 깨지거나 망가지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특성만 보면 건축에 사용하기 좋은 재료는 맞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열에 녹는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화재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열가소성 플라스틱이 열에 녹으면 유독가스가 엄청나게 많이 나오게 됩니다. 한번 화재가 나면 불이 잘 잡히지도 않고, 불이 순식간에 번지는 특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화재가 발생하면 검은 연기가 발생하면서 천장 부분에 보이지 않는 가연성 가스가 꽉 차게 됩니다. 이 가스가 순간적으로 높은 온도에 도달하면 폭발하듯이 터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화재가 급격하게 번지는 것이죠. 이러한 현상을 ‘플래시오버’라고 합니다. 플래시오버는 보통 화재가 발생하고 5~7분 뒤 발생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열가소성 플라스틱은 플래시오버 현상에 빨리 도달합니다. 그래서 금방 화재가 확대되고 불을 잡기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화재에 취약한 방음터널은 놀랍게도 소방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의무가 아닙니다. 소방법상 방음터널은 일반 터널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방음터널 안에는 소화전과 스프링클러 등의 소화설비, 대피로 등의 피난설비가 없습니다. 방음터널은 이름만 터널이고 사실상 방음벽으로 보고 있어 안전과 관련된 규정이 미흡합니다.

방음터널은 왜 화재에 취약하게 지어졌을까요? 국토교통부는 1999년 ‘도로설계편람’ 제정 당시 ‘방음벽에 사용되는 재료 중 외부는 불연성 또는 준불연성이어야 하고 내부의 흡음재료는 자기소화성으로 연소 시 화염을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2012년 개정판부터 해당 내용이 삭제됐습니다. 2016년에나 ‘도로터널 방재시설 및 관리지침’이 개정되면서 방음터널 방재시설 설치 의무화 규정이 신설됐죠. 즉, 2012~2016년 건설된 방음터널이나 방음벽은 화재에 취약하다는 뜻입니다.

동서고가도로에 설치된 방음터널. 허시언 기자
영도고가교에 설치된 방음터널. 김태훈 PD

라노는 문득 부산시의 방음터널 현황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라노의 고향이니까요! 그래서 라노가 시청에 방음터널 현황을 물어봤습니다. 시 관계자는 부산에 설치된 방음터널은 총 4개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영도고가교 화명고가교 가야고가교 동서고가도로에 설치돼 있습니다.

부산시 방음터널 현황.

영도고가교는 6개 구간에 걸쳐 총 1630m, 화명고가교는 1개 구간에 274m, 가야고가교는 1개 구간에 490m, 동서고가도로는 3개 구간에 걸쳐 총 560m의 방음터널이 설치돼 있습니다. 부산의 방음터널에는 열가소성 플라스틱으로 분류되는 폴리카보네이트(PC)가 쓰였습니다. 부산의 방음터널도 화재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뜻하죠.

화명고가교에 설치된 방음터널. 허시언 기자
가야고가교에 설치된 방음터널. 김태훈 PD

부산의 방음터널은 전부 2016년 이전에 지어져 소방시설도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습니다. 시 공무원은 “방음터널이 관련 기준에 미치지 못해 소방시설 설치가 안 된 곳이 있다”며 “1월 중에 전부 설치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동의대 소방행정학과 류상일 교수는 방음터널을 일반 터널로 분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반 터널로 분류되면 소방시설을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방음터널을 전부 없애는 것도 방법 중 하나라고 제안했습니다. 방음터널은 주변 건물에 자동차 소음을 차단시켜주려고 만든 것인데 요즘은 저소음 도로포장 기술이 발달해 예전만큼 소음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방음터널이 설치된 구간에 저소음 도로포장을 새로 하면 방음터널은 없애도 된다는 것입니다. 류 교수는 “굳이 방음터널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류 교수는 사람들의 안전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설마 여기서 불이 나겠어’라는 생각이 안전에 소홀하게 된다는 것이죠. ‘혹시 모르니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소방기기에 돈을 조금 더 투자해야 합니다. 류 교수는 “‘설마’라는 생각은 독이 된다. 모든 사고는 그렇게 시작된다”고 경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