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이거아나] 지역별 비례선발제

허시언 기자 hsiun@kookje.co.kr  |  입력 : 2024-10-18 09:34:26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이번 주 이거 아나에서 소개할 시사상식 용어를 ‘지역별 비례선발제’로 정했어요. ‘공정하다는 착각’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는 “교육은 공정한가”에 대한 주제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는 “교육에 있어서 돈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집안의 부유함이 학습 능력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가. 동등한 기회 속에 분별을 위해 경쟁하지만, 이 구조는 부유한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는 구조다. 이것은 불평등하다”고 지적합니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 발표한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강남 3구 출신은 전체 일반고 졸업생의 4%에 불과한데도 서울대 입학 비율은 12%에 달했습니다. 서울대 진학생 10명 중 1명 이상이 강남 3구 출신이라는 뜻인데요. 한은은 상위권대 진학률 차이를 가져오는 요인의 75%는 부모의 경제적 효과라고 분석했습니다. 학생 개인의 잠재력은 상위권대 진학에 25%만 영향을 미친다는 것. 서울과 비서울 지역의 서울대 진학률을 비교한 결과, 두 지역 간 격차가 약 8%만이 학생의 잠재력 영향이고, 나머지 92%는 잠재력 이외 ‘거주 지역 효과’로 나타났습니다.

한은은 과도한 입시경쟁이 사교육비 증가를 초래하고, 사교육비 부담이 결국 소득 계층과 거주 지역에 따른 진학률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입시 관련 소득·지역 쏠림 또는 불평등 현상을 현재 한국 사회 내 고질적 문제들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했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에서 “강남 학생들이 상위권 대학을 휩쓸고 있다. 교육열이 집값과 대출을 끌어올리고, 지역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사람들이 서울을 떠나게 하는 수준의 극단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한은은 ①과도한 입시경쟁 ②입시를 위한 수도권 인구 집중 ③수도권 인구 집중이 불러온 부동산 가격 상승 ④이로 인한 지역 불평등, 저출생, 만혼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제안했습니다. 상위권 대학들의 입학 정원에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선발하자는 주장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현재와 같이 성적순으로 학생을 뽑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지역별로 정원을 할당해두자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비수도권의 학생들도 상위권대에 진학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한은은 지역 비례선발제를 도입하면 입시경쟁이 초래했던 수많은 문제들을 완화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여기에 더해 지역 인재도 적극적으로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한은의 보고서가 화제가 되면서 지난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관련 질의가 이어졌습니다. 이날 한은 국감은 ‘교육위원회 국감장’을 방불케 했는데요. 한은이 제안한 지역별 비례선발제와 관련해 서울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고려대는 시기상조다, 연세대는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대학들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데 대해 이 총재는 “불가능하다는 것에 동의를 못하겠다. 우리가 주장하는 건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전 세계 어느 대학도 한 지역에 있는 사람만 많이 뽑지 않으며, 이 생각만 하면 (대학들이) 변할 수 있다. 왜 우리만 성적순으로 뽑는지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상위권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 입시 경쟁은 지역 안에서 또 다른 사교육 중심지를 만들고, 그 지역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을 가져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런 제도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지역에서도 부모의 경제력이 높은 학생들만 혜택을 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죠. 이러한 지적에 대해 한은은 인정하면서도 제도 시행에 따른 사회문제 해결의 효과가 이보다 클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또 제도 시행에 앞서 충분한 유예 기간을 둬 문제를 보완해 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