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야생동물치료센터 직원들의 보살핌을 떠나 창공을 다시 제압하려 떠나는 왕새매. 이제 더 이상은 자유를 빼앗기지 않으리라. 서순룡 기자 seosy@kookje.co.kr

추적추적 여름 비가 내린 도시 인근 한 야산 언저리. 좁은 야생동물 이동장에 갇혀 한 시간 가까이 달려온 너구리 두 마리, 물끄러미 밖을 바라보고 있다. 문이 열렸다. 한 녀석이 기다렸다는듯 냅다 뛰쳐 나간다. 그러나 또 한 녀석, 웬일인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그동안 녀석들을 돌봤던 부산야생동물치료센터 직원들이 우리를 거꾸로 뒤집고 나서야 겨우 땅에 발을 디딘다. 그러고도 여기가 어딘가 싶어 헷갈리는 모양. 주위를 잠시 둘러보는가 싶더니 이내 점점 빗방울이 굵어지는 숲 속으로 사라진다.

두 녀석은 지난 4월 초와 말, 차례로 자유를 잃었다. 먹이를 찾아 들판을 헤매다 덫에 걸렸다. 발버둥을 쳤지만 점점 조여오는 죽음의 도구. 다행히 덫을 놓은 '불한당'들이 오기 전에 '착한 사람들'의 눈에 띄였다. 2개월가량 치료를 받은 뒤 녀석들은 길었다면 길었던 구속을 벗어났다.

부상당한채 실려온 황조롱이의 상태를 살피고 있는 부산야생동물치료센터의 여광영, 강신영, 강승구(사진 왼쪽부터) 씨.

부리가 위압감을 주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왕새매, 날카로운 발톱이 예사롭지 않은 천연기념물 참매와 새매. 흐드러진 봄을 마음껏 즐겨도 시원찮은 봄날에 녀석들도 자유를 잠시 유예당했다. 아무 것도 없다고 믿고 날았던 하늘, 인간이 만든 뭔가에 부딪히면서 땅으로 곤두박칠쳤다. 급하게 치료시설로 이송되지 않았다면 녀석들의 삶은 그것으로 끝날 뻔했다.

갇혔던 시간이 그토록 지겨웠을까, 새매는 자연으로 돌려보낼 준비를 하는 중 한 직원이 아차하는 사이 서둘러 장마철 잿빛 하늘로 날아 오른다. 왕새매와 참매도 그동안 몸이 근질했던 것은 마찬가지였을 터. 사람의 손을 떠나자 조금도 머뭇거림도 없이 시야 너머로 사라진다.

너른 들판과 하늘에서는 뭐가 보일까. 아마 녀석들은 이렇게 답했으리라. "자유가 보인다"고.

녀석들을 자연의 품으로 되돌려 보낸 은인은 부산야생동물치료센터.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동물들의 치료에서부터 재활훈련, 자연복귀를 책임지는 곳이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 건물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오른쪽의 호젓한 길로 접어들면 부산야생동물치료센터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해 10월 27일 문을 열었다. 부산권역에서는 유일한 동물치료시설이다. 센터에는 모두 네 명이 일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여광영(48) 강신영(42) 씨 등 두 명은 정식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수의사다. 동물들의 수술을 도맡아한다. 가장 젊은 강승구(35) 씨는 재활훈련을 담당한다. 나머지 직원 한 사람은 행정일을 본다.


동물이 그냥 좋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 및 부산야생동물치료센터 직원들이 김해시 대동면 한 야산에서 너구리를 방사하고 있다.

강 씨는 수의학과를 졸업한 뒤 개업을 하지 않고 곧바로 지난 1993년 공직사회에 발을 내디뎠다. 보건이나 질병관련 여러 부서를 거쳐 지난해 야생동물보호센터에 지원했다. 그리고는 센터 개원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국내에 이같은 시설이 많지 않다 보니 벤치마킹이 힘들어 일은 더 고됐다. 수술실이나 계류사의 배치, 이동 동선 설정 등 모든 것을 하나하나 따져야 했다. 단순히 건물만 들어서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동물을 치료해야 하고 보호해야 하는 역할이 더 필요했던 까닭이다.

여 씨는 고향이 경북 포항. 강원대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일하다 지난해 부산으로 왔다. 당초 부산은 산악지대가 아니어서 치료가 필요한 동물이 강원도만큼 많지 않았을 것으로 여겼다. 곧 그 생각은 틀렸다는 것이 증명됐다. 6월에만 30여종 이상의 동물이 센터로 이송됐다. 야생동물치료센터의 수요예측도 빗나가긴 마찬가지. 센터의 문을 열 때는 치료 동물의 수를 한 해 150마리 정도로 예상했다. 그러나 개원 8개월여만에 300여 마리가 이곳을 찾았다.

두 사람에게 우스갯 질문을 하나 던졌다. 개업을 했다면 돈을 많이 벌었을 것 같다는. 더 많은 것을 이곳에서 배운다는 담백한 대답이 돌아왔다.

경성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강 씨는 종종 낚싯대를 들고 다닌다. 몸을 다친 뒤 오랫동안 기능을 상실한 조류의 비행감각 회복을 위해서다. 새 다리에 낚시줄을 감은 뒤 하늘로 띄운다. 그러면 새는 저마다의 깜냥대로 날갯짓을 한다. 하지만 아직 완치가 안된 조류를 마냥 날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 어느 정도 만족하다 싶으면 줄을 당겨 새를 다시 불러들인다. 새끼들의 사냥훈련도 강 씨의 몫이다. 아주 어릴 때 센터로 들어온 새들은 스스로 먹이를 잡지 못한다. 강 씨는 살아 있는 벌레나 곤충을 이용해 새들이 사냥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연습을 시킨다. 어미새의 역할을 대신하는 셈이다.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날개를 다친 뒤 수술을 받고 재활훈련 중인 독수리. 수술결과는 좋았지만 아주 심한 골절상을 입었던 까닭에 안타깝게도 이 독수리는 더 이상 자연으로 돌아가지는 못한다. 뒤에 보이는 것은 수리부엉이.

다친 동물의 치료는 인간사회의 일반 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접수가 되면 체중 등 기본 상황을 점검한 뒤 혈액분석을 한다. 조류의 경우에는 조류인플루엔자, 포유류의 경우에는 개홍역 등에 걸렸는지를 검사한다. 필요하면 검안경을 통해 눈의 상태를 본다. 고층건물 등에 충돌한 조류의 대부분은 눈에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골절여부를 알기 위해 엑스레이도 찍는다.

상태가 좋지 않은 동물은 우선 집중치료실로 옮겨진다. 사람으로 치면 중환자실이다. 부상정도에 따라 곧바로 수술이 시작된다. 동물도 고통을 느끼는 것은 인간과 마찬가지여서 마취는 필수적이다. 몸이 작은 조류에게는 흡입마취법이 사용되고 포유류에게는 약물주사가 투여된다. 수술에는 출혈이 적고 피 응고기능이 있는 전기수술도가 동원된다.

치료실의 시설은 최신식이다. 수술 도중 동물의 맥박을 측정할 수 있는 모니터를 비롯해 생화학자동분석기, 환자감시장치 등의 다양한 장비가 있다. 집도의사들의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무영수술 등도 갖췄다. "일반 동물병원에 비해 훨씬 시설이 낫다"고 직원들은 자부한다.

급한 고비를 넘긴 동물들은 회복실로 옮겨진다. 이 곳에서 몸상태를 추스리고, 상태가 호전됐다 싶으면 보호장이나 계류사로 간다. 그러나 모두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날개나 척추 등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동물은 자연복귀 대상에서 제외된다. 목숨을 얻은 대신 자유를 반납한 경우다. 녀석들에게는 이 센터가 곧 삶의 터전이자 생을 마감해야 할 곳이다.

동물들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학습속도에 차이가 난다. 어떤 녀석은 먹이사냥 연습에서 곧바로 요령을 터득하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녀석도 있다. 할수만 있다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을 만큼 더딘 경우도 종종 생긴다. 결국은 성격 문제다. 학습속도가 빠른 동물들은 뭐든지 적극적이다. 이런 녀석들은 야생으로 다시 돌아가면 생존확률이 더 높다.


날고 싶은 독수리

센터 내에 있는 보호동물은 조류가 압도적이다. 부산권역이 높은 산이 없는대신 습지 등을 포함한 낙동강을 끼고 있는 까닭이다. 단연 눈에 들어오는 조류는 거대한 독수리 두 마리. 지난 겨울 명지와 마산 인근에서 날개를 심하게 다친채 이송돼 왔다. 안타까운 일은 부상을 당한 뒤 너무 늦게 발견됐다는 것. 초기 치료를 받지 못한 까닭에 날개 부분의 뼈가 골절된 상태에서 붙어 버렸다. 당연히 날갯짓을 할 수 없다. 이는 다시는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뜻. 죽을 때까지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창공을 날 수는 없지만 날개를 쭉 폈을 때 길이가 2m나 되는 독수리의 '카리스마'는 여전하다. 하루에 병아리 20마리를 먹는 왕성한 식욕을 자랑한다. 몸상태라도 볼라치면 2인 1조가 되어 움직여야 한다. 힘이 장사여서 한 사람이 독수리를 완전히 제압하고 다른 사람이 치료를 하는 식이다. 발톱도 조심해야 한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데다 여러가지 균을 가지고 있어 자칫 긁히기리도 한다면 감염이 될 수도 있다.

지난 4월에 센터 식구가 된 솔개 한 마리도 독수리와 마찬가지로 평생 눌러앉아 있어야 할 신세다. 사연이 딱하다. 까치떼의 집단 공격을 받아 날개를 다쳤다. 관절 수술을 했건만 완전한 상태로의 회복은 불가능하다. 한데 모여사는 수리부엉이 다섯 마리는 사이가 아주 좋다. 좀처럼 싸우지 않는다. 그럼에도 위계질서는 있다. 우리 내의 홰에는 항상 세 마리가 앉고, 나머지 두 마리는 그 아래에 머문다. 그들만의 이런 규칙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몸무게가 10㎏나 되는 고니도 이곳에 있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녀석은 날개가 완전히 부러진 상태로 지난 2월 을숙도 인근 물가에서 구조됐다. 상처가 워낙 커 고니 역시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겨울철새인 고니가 여름을 부산에서 보내기는 아주 드문 일. 그러나 나름대로 적응을 잘 하고 있다.

조류들의 먹이는 병아리다. 쥐같은 설치류 역시 좋은 먹잇감이지만 구하기가 힘들다. 병아리는 양계업자들이 볼 때 상품성이 없는 수평아리가 대상이다. 한 마리에 50여 원의 돈을 치르고 보통 한 번에 1만 마리 정도를 사온다. 새들의 야생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산채로 넣어주는 것이 그렇듯해 보인다. 그런데 그건 안된다. CO₂ 가스로 안락사를 시킨 뒤 우리에 넣어야 한다. 동물보호법상에 그렇게 규정되어 있다. 이래저래 불쌍하다. 다친 녀서들도 그렇지만 그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이 희생되는 병아리도.

보호사 내에는 황조롱이가 유난히 많다. 이유는 주로 도심 아파트 등에 둥지를 틀고 살기 때문이다. 실수로 땅에 떨어진 새끼를 발견하면 이를 불쌍히 여긴 시민들이 보호를 하다가 동물구조센터 등에 신고를 한다. 그 즉시 황조롱이는 이산가족이 된다. 센터 측은 황조롱이가 크게 다치지 않았다면 발견된 곳의 인근에 있는 나무에 올려 놓은 것이 오히려 낫다고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든 어미새가 찾아와 보호를 하기 때문이다.


일이 많아도 행복하다

야생동물치료센터 사람들이 느끼는 애로는 밀려드는 동물 수에 비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수의사가 번갈아 가며 수술을 하지만 힘에 부친다. 그래서 다른 동물보호 및 치료기관과 달리 구조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대신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부울경지회(051-261-2400)가 구조를 전담한다. 동물은 치료보다 사후 관리가 더 힘들다. 어미가 없는 새끼 고라니는 2시간 간격으로 우유를 먹여야 한다. 배변까지도 책임진다. 조류도 수시로 상태를 점검해야 된다. 때로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사명감이 없다면 애시당초 불가능한 직업이다.

제대로 쉬기도 힘들다. 휴일이나 일과시간 후라고 해서 동물이 사고를 당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직원들은 퇴근 뒤 집에서 쉬고 있다고 불려나오기도 한다. 휴일에도 반드시 한 사람은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다. 사생활에서 많은 부분을 손해보고 있다.

그래도 보람은 있다. 빈사상태로 실려온 동물들이 건강을 회복해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면 더없이 기분이 좋다. 치료사례가 늘어가면서 임상경험과 여러가지 정보가 축적되는 것도 적지 않는 기쁨이다. 견학을 온 어린이들이 동물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며 배우는 것을 보면 다시 힘이 솟는다.

일이 재미있느냐는 질문에 동물의 재활을 담당하는 강 씨가 씩 웃으며 답한다. "적성에 안 맞으면 이 일 하겠습니까"라고. 그 웃음이 해맑다.


◆ 부산야생동물치료센터에 대한 궁금증 몇가지

개관=2008년 10월 27일

위치=부산 사하구 하단동 1207의 1 낙동강하구에코센터 내

건축비=12억 원(국비 5억, 시비 7억 원)

규모=지상 1층 면적 881㎡(건물동 453㎡, 계류장 및 보호사 428㎡)

인원=4명(수의사 2명, 재활담당 1명, 행정직원 1명)

시설=의료용 현미경, 동물전용 엑스레이 촬영장치, 생화학자동분석기, 동물용흡입마취기, 환자감시장치 등

업무=동물 치료 및 재활훈련, 자연복귀, 시민 대상 동물관련 교육 등

연락처=(051)203-9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