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집창촌의 대명사인 서울 청량리 588의 밤풍경. 빨간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성들이 유리방 문을 열고 행인들을 부르고 있다.

성매매 역사는 인류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 됐다. 성을 파는 여성들은 '악녀'로 낙인 찍히거나, '불쌍한 누이'라는 희생자적 표지에 가둬져 왔다. 일반 사회와 분리된 낡고 견고한 경계는 이들을 고유한 삶의 역사를 가진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거리로 내몰고 있다. 이들이 모여드는 곳이 바로 '악의 소굴'로 취급되는 집창촌이다. 집창촌은 성매매 문제를 가장 여실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오는 23일은 성매매방지법 시행 3주년이 되는 해. 여전히 성매매를 합법화할 것인가, 근절할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치열한 가운데 집창촌 여성들의 삶과 공간을 다룬 책 2권이 나왔다.

성매매 여성들의 삶을 연구하는 막달레나공동체 부설 용감한여성연구소가 출간한 경계의 차이 사이 틈새-성매매 공간의 다면성과 삶의 권리는 성매매 여성을 가르고 구획하는 '경계'를 문제삼는 책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들의 차이, 그 경계 사이에 존재하는 삶의 다면성은 물론 그 경계의 틈새를 헤집고 나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현장보고서다.

김애령 씨 등 9명의 저자들은 성매매 여성의 인권, 성매매방지법과 관련정책, 탈성매매 여성들의 생애사 분석 등을 통해 경계의 틈새에 있는 성매매 문제의 다면성을 살핀다.

저자들은 성매매방지법이 약속하는 여성들의 인권은 '성매매 근절'이라는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여성들의 현실을 돌볼 수 있고, 여성들 스스로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젊은 여성이 길거리에 돗자리를 깔고 행인을 상대로 술을 팔고 있는 조선의 민간기생 모습

"겉으로는 근절하니 어쩌니 그러지만 근절이 되냐고. 경찰이 와서 뭔가를 하지만 그때부터 우리는 한 시간 동안 일 못하고 숨어 있다가 낮에 그 한 시간을 더 일해야 돼. 도움을 줄 거면 현실적인 것부터 해달라는 거지. 무조건 그만두고 와서 살아라, 하는 건 너무 단순한 거지." (전직 성판매 여성 박숙희 씨)

저자들은 성매매 근절과 합법화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내세우지는 않고 있다. 이는 성매매가 노동이 될 수 없는 이유와 노동이어야 하는 이유가 우리 사회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성매매 여성들을 만나 그들에게 '당장 그곳에서 나와라'가 아닌 '어디에 있든 건강한 여성 주체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온 다양한 실천들을 이 책에 담고 있다. 자활지원 사업, 동료교육 프로그램, 의사들과 현장지원 활동가들이 함께 만들어낸 의료지원 등의 생생한 경험들은 서로에게 놓인 경계를 넘어서기 위한 만남이었고, 각자의 편견을 넘어서게 하는 계기가 됐다.

1906년 서울 용산구 도화동에 설치된 모모야마 유곽.

'노는 계집'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는 뜻의 집창촌(集娼村)은 당국의 강력한 단속과 함께 도시 개발 논리에 밀려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그많던 집창촌은 어떻게 생겨서 어디로 사라졌을까. 10여 년의 기자생활을 거쳐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는 홍성철 씨가 쓴 유곽의 역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첫 유곽은 1902년 7월 부산에 생겼다. 아미산하(峨媚山下) 유곽이다. 이 유곽은 일제 강점이 시작된 뒤 장소가 협소해 현재의 위치로 이전한 후 '미도리마치'(綠町)로, 해방 이후에는 '완월동'이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떨쳤다.

일본인들을 위해 들여온 집창촌은 철도의 발달과 함께 점차 조선 전국에 뿌리를 내렸다. 식민지 착취로 빈곤에 시달리던 여성과 성매매에 눈을 뜬 남성들은 집창촌에 빠져들었다. 이후 집창촌은 굴곡진 한국사의 흐름과 함께 시기마다 변모하며 그 역사를 유지해 왔다.

지난 2004년 9월23일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되자 이에 반발하는 부산 완월동 성매매 여성과 업주들이 충무동 도로로 몰려나와 법 폐지를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사진제공 페이퍼로드

그러나 우리 사회는 집창촌을 이용하는 동시에 부정하고, 비난하면서 요구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며 타자화된 '그들의' 역사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모른 척 해왔다. 이 책은 아미산하 유곽에서 파주 옹주골까지 집창촌 100년의 기록이다. 비가시화된 우리 삶의 한 터전이자 문화의 소비공간이었던 유곽을 가시화한 셈이다.

완월동은 한때 아시아 최대의 사창가로 불렸다. 다른 사창가와는 달리 외국인 접대의 성격을 띠었기 때문에 번성했다. 1970~80년대엔 달러와 엔화를 벌어들인다는 이유로 당국은 이곳을 묵인했지만 현재는 성매매특별법으로 찬바람이 생생 불고 있다고 한다.

문득 '정든 유곽에서'의 시인 이성복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나 우리는 누구냐/ 우리의 후회는 난잡한 술집, 손님들처럼 붐비고/ 밤마다 우리의 꿈은 얼어붙은 벌판에서 높은 송전탑처럼/ 떨고 있으니 날들이여, 정처없는 날들이여 쏟아 부어라/ 농담과 환멸의 꺼지지 않는 불덩이를…" ('다시, 정든 유곽에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