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부산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킨 부산진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의 호주인 교사 등 3명에게 대한민국 훈장이 추서된다. 호주인이 독립유공자로서 훈장을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왼쪽부터 멘지스 데이비스 호킹.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제공

국가보훈처는 오는 3·1절에 부산진일신여학교의 설립자와 교사 등 호주인 3명에게 대한민국 훈장을 수여한다고 24일 밝혔다. 추서가 공식화되면 이들은 호주인 최초의 독립유공자가 된다. 지금까지 훈장을 받은 외국인은 70여 명으로, 대부분 중국인이다.

이번에 훈장을 받는 호주인은 ▷학교 설립자 벨레 멘지스 ▷교장 마가렛 데이비스 ▷교사 데이지 호킹이다. 보훈처는 이들의 훈격을 심의 중인데, 선례에 비춰볼 때 건국훈장 애족장 또는 대통령표창이 수여될 전망이다.

세 사람은 ‘부산 일신여학교 만세운동’ 때 학생들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일경에 체포됐다. 1919년 3월 11일 밤 9시 이 학교 학생 11명과 교사 2명이 동구 좌천동 거리에서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다 일경에 체포된 사건이다. 당시 학생들은 3·1만세운동 당시 발표된 독립선언서를 입수한 후 부산에서도 의거를 일으키자고 결의해 거리로 나왔다. 설립자 멘지스는 만세운동 때 쓰려고 만들었던 태극기를 불태우는 등 증거를 인멸했다며 경찰에 붙잡힌 뒤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데이비스는 만세 운동 당시 학생을 직접 인솔했다는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고 불기소 처분됐다. 호킹 역시 학생들과 함께 운동에 나섰다가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돼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의 구체적 행적은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와 광복회 호주지회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해 2월부터 합동 조사에 나선 두 기관은 일본 국무성 자료와 호주선교일지, 신문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당시 세 사람의 활약상을 입증했다. 1년 8개월간 수집된 자료를 근거로 두 기관은 부산보훈청에 세 사람의 서훈을 신청했다.

서훈에 앞서 보훈처는 다음 달 3일 동래여고에서 한국-호주 수교 60주년 기념 감사패 증정식을 개최한다. 호주는 6·25 전쟁 당시 육·해·공군을 통틀어 8407명을 파병한 우방국이다. 또 동래여고는 부산·경남의 학교 중에서 가장 많은 12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학교다. 만세운동 당시 의거에 뛰어든 학생 10명과 교사 1명은 대통령표창이 수여됐다. 부산 출신의 대표적 무장 독립운동가 박차정 의사(독립장) 역시 이 학교 출신이다. 보훈처는 호주와 인연이 깊은 동래여고에서 이날 행사를 여는 것으로 양국의 우호적 관계를 다질 계획이다. 감사패는 캐서린 레이퍼 주한호주대사와 최병규 동래여고 교장이 받는다.

세 사람의 행적 발굴에 앞장선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장은 “한국 전쟁 당시 호주 총리였던 로버트 멘지스는 벨레 멘지스의 조카로 알려졌다. 호주가 많은 인원을 파병한 데 이 점 또한 영향을 줬을 것으로 짐작된다”며 “부산과 호주의 관계를 재확인하고 결속을 더욱 견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박호걸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