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살인·데이트 폭력·여경 무용론 등에서 비롯된 젠더 갈등이 연일 논란이 되는 가운데 부산지역에서는 대학·시민단체 등 성평등 문제를 논의하는 장이 점점 좁아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21일 30대 남성 A 씨가 전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다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 9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1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면 2019년 발생한 데이트폭력은 9858건으로 2016년과 비교해 2621건 증가했다. 표심에 몰두한 정치권 덕에 이대남(20대 남성), 이대녀(20대 여성) 편을 갈라 대립하는 단계까지 왔다. 최근 발생한 인천 흉기난동 사건과 관련해서는 정치권에서 ‘여경 무용론’을 부추겨 ‘젠더 갈라치기’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젠더 갈등 이슈가 점점 깊어지고 있지만 지역에서는 성평등 논의는 위축되는 양상을 보인다. 27일 지역 대학 등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부산 4년제 대학 가운데 여성 인권과 성평등 문화에 앞장섰던 총여학생회가 존재하는 곳은 사실상 전무하다. 2018년 동아대, 고신대가 총여학생회를 폐지한 뒤 현재 남아 있는 곳은 경성대 부경대 등 2개 대학에 불과하다. 두 곳 역시 총여학생회장이 수년간 공석이어서 유명무실한 상태다. 총여학생회의 역할은 대학이 운영하는 인권·성평등 센터로 옮겨갔다.

　하지만 자발적인 논의나 토론보다는 신고 접수나 교육 위주여서 학생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낮다’는 평을 받는다.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지역 여성단체의 지원을 받아 증가했던 학내 성평등 동아리 역시 현재는 활동 공간 부족, 코로나19로 인한 대면 제한,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인해 급격히 축소된 상태다.

　부산대 재학생 정모(23) 씨는 “페미니즘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세대인데 대학 내에서는 공론의 장이 거꾸로 없어지는 것 같다. 학생들의 자발적 성평등 논의가 제도권의 보호와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석영미 부산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성평등·성폭력 문제는 남녀 간의 성 갈등이 아니라 윗세대와 아래세대가 풀어야 할 문제라는 인식이 학내에 널리 퍼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역 여성단체의 활동 역시 코로나19 확산과 주요 활동가의 사퇴 및 정치권으로 이동 등으로 위축됐다는 의견도 있다. 지역 여성단체에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그간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여성단체들이 대표 활동가 사퇴 등으로 구심점을 잃으면서 대시민 등 대외 활동이 줄어들어든 것 같아 안타깝다”며 “n번방 사건이나 오거돈 사건 등 일부 대규모 이슈 외에도 젠더 간 갈등이 격화하는 경향을 보이는 만큼 지역 내에도 대규모 성평등 운동이나 논의가 다시 활발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 min55@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