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에 이어 몰도바까지 점령하려는 야욕을 드러내면서 전쟁 장기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에 켜진 경고등도 당분간 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러시아, 몰도바까지 침략하나

24일 AP·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최정예 부대 12∼14개가 우크라이나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떠나 동부로 이동 중이다. 러시아를 돕고 있는 체첸 자치공화국 지도자 람잔 카디로프도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를 위해 우크라이나에 수 백명의 지원병을 추가 배치했다고 적었다. 친러시아 반군이 활동 중인 우크라이나 루한스크의 관료도 “루한스크의 모든 도시가 24시간 포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러시아는 마리우폴 점령에 이어 동부 돈바스와 남부를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2단계 목표를 제시했다. 러시아군 중부군관구 부사령관 루스탐 민네카예프 준장은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2단계에서 러시아군의 과제 가운데 하나는 우크라이나 돈바스와 남부를 상대로 완전한 통제를 확보하는 것이다. 러시아군이 트란스니스트리아(러시아명 프리드녜스트로비예)로 나아갈 수 있는 또 다른 출구를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동유럽 국가 몰도바에서 1990년 분리·독립을 선언한 친러시아 성향의 분리주의 공화국이다. 주민 50여만 명 가운데 러시아인이 약 30%를 차지한다. 러시아는 트란스니스트리아에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수천 명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남부를 점령할 경우 친러 반군이 점령한 돈바스와 2014년 무력으로 병합한 크림반도에 이어 몰도바 트란스니스트리아로 나아갈 육상 통로를 확보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는 바다를 잃은 내륙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러자 몰도바는 러시아 대사를 소환해 항의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이날 “우크라이나는 시작에 불과하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외에 다른 나라도 점령하길 원한다”고 주장했다. 몰도바는 전쟁 초기 중립을 선언했다 지난달 유럽연합(EU) 가입을 신청했다.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흉측하게 파괴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아파트 단지 앞에 21일(현지시간) 새봄을 알리는 튤립이 피어나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우크라, 내륙국가 전락할 수도

러시아군은 현재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와 헤르손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오데사에 대한 미사일 공격으로 지금까지 최소 2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사망자 중에는 생후 3개월 된 신생아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해의 항구 도시인 헤르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거점이다. 우크라이나군도 반격에 나서 헤르손에서 러시아군과 교전 중 러시아군 고위 장교들이 모여있던 야전 사령부를 폭격해 장군 2명을 숨지게 했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수도 키이우역 지하철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회담을 거듭 제안했다. 그는 “평화 협상으로 이어질 수만 있다면 푸틴 대통령과 만나는 것이 두렵지 않다”며 “만났으면 좋겠다는 게 아니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외교적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오는 26일 모스크바에 이어 28일 키이우를 방문해 중재에 나설 예정이다. 모스크바에서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실무 협의를 한 데 이어 푸틴 대통령과 만난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키이우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동할 예정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키이우보다 모스크바를 먼저 방문하겠다는 구테흐스 사무총장을 향해 “먼저 러시아에 갔다가 우크라이나로 오는 것은 그야말로 잘못”이라며 “순방 순서에 공정도 논리도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키이우에서만 민간인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면서 “전쟁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다. 모스크바의 거리에는 시체가 없다. 먼저 우크라이나 국민을 만나 침공의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논리적”이라고 강조했다.

피에르-올리비에르 고린차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본부에서 새 세계경제전망 보고서 내용을 설명하는 화상 브리핑을 하고 있다. 워싱턴 신화=연합뉴스

● 인플레이션에 경제 충격파

전쟁 장기화에 한국 경제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블룸버그가 국내외 경제전망 기관 35곳을 상대로 이달 7∼12일 설문한 결과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평균 2.8%로 집계됐다. 한국 정부의 전망치(3.1%)나 한국은행(3.0%)보다 낮은 것이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물가도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와 밀 가격은 올해 들어 35.7%와 38.2% 상승했다.

대표적 식용유인 팜유 가격도 30% 이상 올랐다. 특히 세계 최대 팜유 수출국인 인도네시아가 자국 물가 안정을 위해 오는 28일부터 팜유 수출을 금지하기로 하면서 밥상 물가 상승세가 한층 속도를 내게 됐다.

철강업계도 철광석과 석탄 등 원재료 가격 급등을 이유로 가격을 올리려 준비 중이다. 실제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등으로 인해 제철용 원료탄과 철광석 등 철강제품 생산에 쓰이는 원자재 가격은 급등한 상태다. 철광석 가격은 지난 23일 기준 t당 150.5달러로 연초에 비해 22.5% 올랐다. 제철용 원료탄의 가격도 22일 기준 t당 530달러로 연초보다 47.4% 급등했다. 반면 조선업계는 전체 제조원가에서 20%의 비중을 차지하는 후판 가격이 오르면 수익에 타격이 예상돼 고민이 크다.

여기다 중국 경제 중심지인 상하이의 봉쇄가 28일째로 접어들면서 공장 가동 중단과 물류 적체가 날로 심각해져 한국GM이 중국산 부품 공급 차질로 조업을 단축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인플레이션 압박이 심해지자 한국은행은 물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인사들도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시사하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21일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 방침을 공식화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