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과 교수인 저자 직접 설계
- 작은 집 3채의 건축 과정 담아
- 최소한의 필요, 최대 희망 반영
- 집에 관해 다시 생각해보게 돼

시작은 5000만 원으로 집을 지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재건축 사업 같은 조 단위 프로젝트를 맡거나 좋은 자재로 크게 짓는 건물만 설계해봤을 저자는 자를 대고 직접 그린 설계도면을 들고 찾아온 건축주의 플랜에 당연히 의문을 가진다. 건축주는 “그렇게 지어줄 사람이 있다”는 말만 남기고 가버렸지만, 막상 그때부터 건축설계사로서 저자의 호기심이 발동한다.

	서현 교수가 설계한 충주의 집 ‘문추헌’. 52㎡(16평) 남짓한 이 집은 최소 건축비에 건축주의 최대 요구를 담아 지어졌다. 효형출판 제공

서울대 건축학과 서현 교수가 쓴 ‘내 마음을 담은 집’은 그가 설계한 작은 집 3채의 건축 과정을 담았다. 그 시작이 건축비 5000만 원짜리 집인 ‘문추헌’이다. 건축주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충주 추평리의 아늑한 풍경에 자리잡은 집터를 보러 갔을 때 그는 이미 이 집 짓는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5000만 원 남짓으로 예쁜 집을 짓는 게 가능했던 건 역시 그의 무료설계 덕이 컸을 것이다.

예산이라는 한계에 맞춰 ‘최대 효율’을 고안하던 서 교수에게 건축주가 돌연 ‘천창(천장 창문)’을 내달라고 주문한다. “천창을 만들면 결로가 생기기 쉽습니다” “결로가 생기면 왜 문제죠?” “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지겠죠” “그럼 닦으면 되는거 아닌가요?” “!”

예산이라는 한계 안에 어떻게 조건을 끼워 맞출 것인가만 고민했는데 발상을 전환하면 가능해지는 것들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서울대 교수이고 건축계의 셀럽이면서 명망 높은 공공건축가이지만 시골마을에서 현장소장이 된 저자의 에피소드들도 재미있다. 설계사가 아무리 멋들어지게 설계해도 건물 내벽에 벽돌을 예쁘게 쌓는 건 조적공의 몫이다.

벽돌 반 장이 필요하면 ‘쇠흙손’으로 아무렇게나 툭툭 쳐서 벽돌을 쪼개 붙이는 터프한 벽돌공들. 그들을 살살 구슬러서 벽돌의 치수까지 재서 전기톱으로 정확하게 자르게 하는 것도 그의 작업에 포함돼 있다.

‘매일 매순간 모습을 바꾸는 하늘을 가진 집.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하늘을 가진 집. 그게 내가 건축주에게 건넨 선물이다… 좋은 집은 그곳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담는 공간이다. 그 마음은 보이지도 않는데 가끔 이리저리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마음을 담는 집의 가치는 보이는 잣대로 계측되지는 않는다’.

저자와 함께 집을 짓는 현장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글솜씨가 좋아서 술술 따라 읽다보면 건축이란 분야에도 슬며시 관심이 들게 되는 책이다. 자신의 취향과 필요를 고스란히 반영한 예쁜 집을 짓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시뮬레이션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도움이 되겠다. 온갖 ‘기능’과 ‘디자인’이 범벅된 TV 예능 프로그램 속 화려한 집들을 보다가 최소한의 필요와 최대한의 희망을 반영해 지어진 집들을 보면서 ‘집’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