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시를 쓰는 손음(본명 손순미)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누가 밤의 머릿결을 빗질하고 있나’를 펴냈다.

시집 ‘누가 밤의 머릿결을 빗질하고 있나’를 펴낸 손음 시인.

‘네이미럴, 네이미럴, 할머니의 종교는 네이미럴, 식구들은 봄날이 가는 것을 밀고 또 밀었다 욕쟁이 할머니가 만든 백숙을 먹고 식구들은 낮잠을 잤다… 담벼락의 구멍 사이로 그 집의 세계는 오래도록 상영된다(‘만화경’ 중)’

‘오래된 지붕은 비밀스럽다 회의가 있는 것처럼 검은 정장의 고양이들이 지붕 위로 모여든다… 여자의 고함 소리가 다시 옥상을 흔든다 남자가 또다시 욕을 한다… 옥상까지 올라온 욕이 무겁다(‘지붕 위의 고양이 역’ 중)’

그의 시에서는 길을 걷다 무심코 남의 일상을 들여다 보는 듯한 이미지들이 눈에 띈다. 누군가의 신산한 삶은 ‘담벼락의 구멍 사이로’ 거리를 두고 관조하고, 험악한 생활소음은 지붕 위 고양이의 안락함을 위협할 뿐 나를 흔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담담하다 해도 그만큼 자세히 들여다보는 태도는 이미 개입이고 깊은 연민이다. ‘편의점 생각’ ‘미자 화분’ ‘낙원빌라’ ‘밥’과 같은 시에서 시인은 가난한 이웃과 고단한 나의 삶을 담담하게 관찰하는 것으로 그만의 위로를 보낸다.

‘나는 어쩌다 자정에 밥을 짓는 사람/밤은 외롭고 밥도 외롭다…나는 진지하게 밥물을 쏟아내는 밥솥 곁에서 울컥 식구들을 만난다… 밥은 먹었느냐/밥은 먹고 사느냐/밥벌이는 하느냐/ 밥이 밥에게 안부를 묻는다(‘밥’ 중)’

손 시인은 199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와 현대시학에 당선돼 등단했다. 첫 시집 ‘칸나의 저녁’과 연구서 ‘전봉건 시의 미의식 연구’를 냈고 제11회 부산작가상을 받았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