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권 희생양 된 소크라테스
- 죽기 전 마지막 대화·행적 기록
- 억울한 사형에도 변명 안 해
- 탈옥 권유엔 “명예롭지 않아”
- 유머 던지며 흥겹게 생애 마감

- 생식을 통한 생명 불사성 논의
- 시대 앞서간 ‘사랑학’으로 평가
- 연하 남자 애인 알키비아데스는
- 잠자리 유혹하려다 실패하기도

생각하는 대로 살았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자 성현인 소크라테스(기원전 469년~기원전 399년). 대화와 질문으로 상대방이 무지를 깨우치게 했을 뿐 자신 이름을 내건 책은 내지 않았다. ‘모른다는 걸 안다’는 정도로는 책을 지을 수 없다고 생각한 걸까. 오늘날 우리는 소크라테스 수제자인 플라톤이 집필한 저서들-스승의 대화, 질문·행적을 기록한 대화편(對話篇)-을 통해 소크라테스를 만난다.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인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 작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년). 독배를 건네받는 소크라테스는 초연하나 지인들은 아주 슬퍼한다. 친구 크리톤은 소크라테스 무릎에 손을 얹고 응시하고, 침대맡 플라톤은 고개를 숙였다. 아내 크산티페가 작별하며 계단을 오른다. 소크라테스는 근육질로 그려졌는데 실제 강건했다. 그림 속 소크라테스는 추남이 아니고 키도 작아 보이지 않는다.

대화편 중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연결된 세 고전. ‘변명’은 2400여 년 전 반대파 고발로 아테네 법정에 선 70세 소크라테스가 당당히 펼친 세 차례 변론을 담았다. 자신을 ‘아테네 등에’, 당대 아테네인을 ‘잠자는 큰 말’이라 하며 그들의 무지를 깨물었다. ‘크리톤’ ‘파이돈’은 각각 그에게 사형이 내려진 뒤 30일째 날과 독배를 마신 마지막 날 감옥에서 벌어진 일과 대화를 다뤘다. ‘크리톤’에선 소크라테스가 탈옥 권유를 거절한 이유가 나온다. 죽음을 기쁘게 맞이하는 중이기 때문. ‘파이돈’에서 그는 독배를 마실 참인데도 철학 토론에 여념 없다.

대화편 ‘향연(심포지엄)’은 플라톤이 존경하는 스승에게 쓴 헌사. 당시 레나이아 비극 경연에서 우승한 시인 아가톤이 주관한 축하 잔치(향연)에 소크라테스가 초대됐다. 손님들이 행한 에로스(사랑) 연설이 흥미진진하다. 소크라테스 이모저모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연하 남자 애인 알키비아데스가 잠자리에서 그를 유혹했지만 실패한 얘기가 나온다.

	소크라테스 동상(왼쪽)과 그가 촉망한 연하 남성 애인인 알키비아데스의 두상.

석공 아버지와 산파 어머니를 둔 소크라테스는 젊은 시절 한때 석공소와 공회에서 일했다. 보수 없이 다른 이를 깨우치며 여생을 보냈다. ‘지식 상인’이었던 소피스트들에게 그런 소크라테스는 미운털. 변증법 문답으로 상대방 영혼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소크라테스 대화법은 산파술이라 불렸다. 맨발로 걸어 다니며 누구에게나 말을 거는 이 노인을 따르는 유력가 청년이 많았다. 30인 과두정에서 민주정으로 복귀한 아테네는 정세가 어지러웠다. 정치권은 이런 현실에 대한 책임을 전가할 희생양을 찾았다. 그 제물이 밉보인 철학자 소크라테스.

“아테네인 여러분!” ‘변명’은 첫 문장부터 박력이 넘친다. 상상해보자. 변론 제한 시간을 재는 클렙시드라(당시 물시계)와 법정을 메운 500여 명 시민 재판관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당당하게 말문을 여는 소크라테스다. 재판관을 그저 “아테네인”이라고 불렀다. 죄 없는 자신을 심판하는 그대들을 재판관으로 인정 못 한다는 일갈. 죄목은 크게 두 가지다. 멜레토스를 대표로 내세운 반대파는 소크라테스는 아테네가 믿지 않는 신을 추앙했고, 궤변으로 아테네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며 몰아세웠다. 소크라테스는 자신과 관련된 신탁(“소크라테스가 당대 사람 중 가장 현명하다”)을 해명해 다른 신을 믿었다는 죄목을 무력하게 만든다. 신탁을 좇아 당대 현인·시인·장인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현명하지 못함을 일깨우면서 반감을 사는 바람에 법정에 서게 됐다고 설명한다. 자신은 신이 명하는 바를 성실하게 이행하느라 보통 시민이 해야 하는 일을 못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변론’하면서도 아테네 시민(재판관)을 위해 ‘변명’해준다. “그런데 아테네인 여러분,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변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이 여러분에게 보내준 선물인 나를 처벌함으로써 여러분이 신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여러분을 위해 변명하려는 것입니다.” 그는 심기 불편한 재판관들이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그렇게 말해야 산다는 걸 알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첫 변론 후 유죄판결이 내려지자 2차 변론했는데도 최종 사형이 선고된다. 이제 마지막 3차 변론. 이때야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재판관’이라 부른다. 유죄 표를 던진 반대파는 법정을 떠났고, 자신을 지지하는 재판관들만 법정에 남아서이다.

변론은 강직하고 빈틈없다. “죽음 회피가 어려운 게 아니라 불의를 피하는 게 어렵습니다. 불의는 죽음보다 빨리 달립니다. 나는 늙고 행동이 둔해 느리게 뛰는 자에게 붙잡혔지만 예리하고 기민한 나의 고발자들은 빨리 달리는 자, 즉 불의에 붙잡혔습니다.” 1차 재판관 투표에서 30표 차이로 유죄가 결정됐다. 재판관을 꾸짖는 변론을 한 2차 투표에서는 유죄가 50표 더 늘어나 사형이 확정됐다.

당시 아폴론 제전을 위해 배가 아테네를 떠나 델로스섬에 갔다가 귀환하는 일정이 시행됐다. 이 기간엔 아테네 내에서 사형을 미뤘다. 재판 전날 배가 출항하는 바람에 소크라테스 사형 집행은 30일 뒤로 연기됐다. 친구 크리톤은 그 배가 도착한 날 새벽에 감옥을 찾아가 소크라테스를 만났다. 그는 간수를 매수했으니 탈옥하라지만, 소크라테스는 거절했다. 아테네인 동의 없이 도망치는 일은 악에 악으로 대응하는 처사로 올바르지도 명예롭지도 않아 탈옥할 수 없다는 설명. 그런 방식으로 아테네를 떠나고, 도와준 이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다며 “친구여, 신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세”라고 말한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 임종을 지킨 제자 파이돈이 보고 들은 바를 제삼자에게 설명하는 형식을 띤다. 소크라테스가 족쇄 풀린 발목을 만지며 한 말. “죽음을 앞둔 지금이야말로 철학을 찬미하기에 좋은 시간이지.” 그는 진정한 철학자라면 죽음을 맞이해 기쁜 마음을 가져야 하며, 죽은 뒤 저세상에서 최대 선을 얻는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걸 입증하려 한다. 용기 절제 정의 지혜 같은 덕목을 설명하고, 영혼이 저승에 존재하며 불멸한다는 상기설(想起說)을 논증했다.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의학 신)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 두었다가 빚을 갚아 주겠나?” 알 듯 모를 듯, 지상에서 제일 유명한 유언을 남겼다.

‘향연’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머리숱이 적은 큰 머리를 쳐들고 사방을 바라보며 시내를 활보하는 노익장이었다. 작달막하고 못생긴 소크라테스를 아테네 권력가이자 미남 청년 알키비아데스가 좋아했다. 그는 소크라테스에게 보기 좋게 ‘차인’ 경험을 좌중에 고백했다. 욕정을 제어하는 건 철학자에게 기본인 바 소크라테스는 그걸 실천했을 뿐. 그는 술에 취하지 않도록 극기해 자신을 지켰다. 소크라테스는 ‘만들어진’ 두주불사형 철학가. 자족이 목표인 철학가는 체력도 강해야 했다. 실제로 강건했던 그는 펠로폰네소스전쟁에 3회 출전해 무용담을 만들었다. 맨발로 얼음판 위를 걸어 다녔고, 대식가인데도 굶주림을 잘 참았다. 후퇴하면서 사방을 살피며 느긋하게 걸어가자 주변 병사들이 용기를 냈다. 병영 생활 중 한번은 밤을 새워 20여 시간을 한자리에 서서 사색하기도 했다.

‘향연’에는 에로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개진된다. 소크라테스는 지혜로운 여인 디오티마에게서 가르침을 받아 깨우친 사랑 정의를 전한다. 사랑은 선(善)을 영원히 소유하는데 생식을 대상으로 삼는다. 생식을 통해 영원성과 불사성(不死性)을 얻기 때문.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생명 불사성이 논의됐다는 게 놀랍다. 생명체는 죽지만 생식을 통해 유전되는 DNA는 불멸이라는 사실이 현대 들어 확인됐다. 모든 개체가 뜨거운 욕망과 사랑에 쫓기는 것도 불사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소크라테스 사랑학과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가 묘하게 겹친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축배처럼 마셨다. 흥겹게 죽음을 맞이한 소크라테스를 생각하며 그 후로 많은 이는 마음을 키웠다. 우리가 그에게 빚을 졌다.

서평가·세상관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