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문화연구가가 쓴 만두 역사
- 고고학 등 광범위한 문헌도 참고
- ‘제갈량 고사’ 기원설 사실 무근
- 우리나라는 김치 등 활용해 변형

통통하고 기름칠 한 듯 반짝이는 피, 주름진 입을 합죽하게 모은 채 찜통에서 모락모락 김을 올리는 만두. 간 고기와 채소가 듬뿍 든 군만두는 조심성 없이 콱 씹으면 즙이 팡 터져나와 ‘지옥의 뜨거움’을 선사하지만, 그 마성의 맛에 비하면 기꺼이 감내할 수준이다. 채소 육류 곡류가 고루 들어있어서 밥 대용으로 먹어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거의 유일한 기호식품이기도 하다.

만터우(饅頭)는 두툼하게 발효시켜 찌는 만두. 대개 고기나 팥 등 소를 넣지 않고 주식으로 먹지만 소를 넣기도 한다. 오른쪽 사진은 자오쯔(餃子). 고기, 채소 등을 곱게 갈아 얇은 밀가루피에 싼 만두다. 따비 제공

우리가 사랑하는 만두에 관한 책이 나왔다. 음식칼럼니스트이자 음식문화연구가 박정배가 쓴, 책 이름도 ‘만두’다. 미식의 대상으로서 만두를 탐닉한 내용은 아니고 문헌을 통해 한중일 만두의 역사와 문화를 상세히 조사하고 기록한 책이다.

중국인에게 만두는 기호식품이 아닌 주식이다. 맛 조리법 모양 지역에 따라 종류가 족히 수백 개는 되는 중국의 만두는 오랜 역사만큼 다양한 이야기와 탄생비화를 안고 있다.

한국에서 뭉뚱그려 만두라고 부르는 음식을 중국에서는 밀가루 피 발효 여부에 따라 크게 만터우(만두·饅頭)와 자오쯔(교자·餃子)로 구분한다. 우리가 만두라고 부르는 건 사실 중국의 교자에 가깝고 중국의 만두는 한국의 찐빵과 오히려 비슷하다. 만터우와 자오쯔는 오랫동안 중국에서 귀한 음식이었다. 일단 제분법이 발달해야 하고, 밀이 널리 보급돼야 했으며 쪄 먹는 조리기술이 발전해야 만들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값싸고 흔한 음식이 아닌 만큼 중국인들은 자신의 소망을 이 두 음식에 투영해 재물과 안녕을 기원하기도 했다.

한국에까지 제법 널리 알려진 만두의 기원은 제갈량과 관련한 고사다. 촉의 제갈량이 만족(蠻族·야만인) 정벌에 나섰을 때다. 만족의 풍습에 따르면 사람을 죽여 그 머리로 승리를 비는 제사를 지내야 했는데, 제갈량은 그 대신 양과 돼지의 고기를 섞어서 밀가루로 싼 뒤 사람 머리 모양으로 만들어 썼고 이것이 만두가 됐다는 얘기다. 저자는 중국의 고문헌을 조사해보면 이것이 그저 ‘소설’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만두가 제사에서 비롯됐다는 것, 사람 머리사냥을 하던 부족의 습속과 이 음식이 무관하지 않은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한국의 만두는 어떨까. 고려가요 ‘쌍화점’에 등장하는 음식 쌍화는 발효시킨 피에 소를 싼 중국식 만터우와 흡사했다. 조선 시대까지는 발효 만두와 비발효 만두의 구분이 있었지만 20세기가 되면서 발효시키지 않은 쪽만 ‘만두’로 불리기 시작했다. 얇게 저민 생선살을 피로 쓰는 고급 어만두나 김치만두 같은 한국식 만두도 발전했다. 그냥 떡의 한 종류라고만 생각하지만 송편도 알고보면 만두의 한국식 변형이다.

일본에서는 만두가 ‘만주’로 발음되며, 끼니가 아닌 간식으로 발달했다. 팥소를 넣은 만주는 고위층의 다도문화와 결합해 정착했다. 고기소를 넣은 만두가 대중화한 것은 육식을 권장하는 문화가 생긴 메이지 시대부터다.

중동에서 밀이 전래된 이후 동북아시아의 독특한 음식 체계가 된 만두. 저자는 한중일에서 발달한 만두와 교자의 문화사를 정리하기 위해 고고학·언어학적 자료까지 광범위하게 연구했다. 만두라는 음식 하나에 동북아의 오랜 역사와 문화가 담겼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