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대 일상을 노래한 글도 눈길

- 9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

‘진눈깨비라고 말하고 싶지만/당신 설레는 눈은 눈이라 우기고//풋 풋 날리는 먼 나라에서 온 거짓말 같은/눈이 있고… 눈이 오면/시간이 얼고 시간이 녹고//눈은 눈길을 지우고 눈길은 눈을 닫고//사라진 기억은 하얀 것이어서/슬픈 눈으로 오고//당신이 내게 내린다면/백 년쯤 홀로 눈에 묻혀도 좋고 (표제작 일부 발췌)’

두 번째 시집을 낸 김형로 시인.

부산 시인 김형로가 두 번째 시집 ‘백 년쯤 홀로 눈에 묻혀도 좋고(상상인)’를 냈다. 201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미륵을 묻다’로 당선되며 등단한 김 시인의 시에서 예전에 발견 못한 포근한 감성이 묻어나 미소 짓게 된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눈인지 비인지 흩날리는 눈발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기억 속에, 사랑하는 대상이 차츰 눈과 동화되고 그 안에서 영원히 함께하기를 원하는 마음은 분명 지극한 연애시고 서정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보니 사랑시조차도 자연의 무한과 영원에 기대 종교적 초월로 나아가는 그의 시세계 안에 있음이 느껴진다.

김경복 문학평론가는 김형로의 시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다음의 짧은 시를 들었다.

‘뜻 없이 뜨거웠던 것은 없었습니다//온기에도 무게가 있더군요//하얀 손이 그걸 안다는 게 얼마나 고맙습니까(‘검정의 무게’ 전문)’

“존재의 본질적 조건인 감각으로 이 세계의 무상하고 무정형인 형상에서 온기를 느낀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의해 존재의 뜨거움에는 어떤 깊은 뜻이 깃들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놀라움이 이 시의 출발이다. 경탄 또는 경외로 불려야 할 이러한 자세는 자신의 존재성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여 끝내 탄생하여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이 자체에 고마움을 느끼게끔 한다 … 어둠 속에서 빛과 온기로 자신의 존재성을 획득하는 과정의 드러남이다.”

그의 시가 그렇다고 존재론적 상념에 매달려 일상의 구체적이고 잔잔한 감각과 거리를 두는 것은 결코 아니다. 평생 직장생활하다 퇴직하고 예순 나이에 시인이 된, 지금은 시 쓰고 책 읽으며 사는 한 남자의 평범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글이 군데군데 눈길을 붙잡는다.

‘자립을 하겠다 한다/저에게 보내던 돈으로 이제/맛난 것 사드시고/택시도 타고/엄마랑 편하게 사시란다/서두르지 말라 해도 … 남들은 대견하다 하는데/나는 혼자 술잔을 마주하고 있다/마음의 끈 하나가 떨어진다… 창틀은 안전한지 거리는 밝은지 볕은 드는지/궁금한게 참 많은데/저를 믿으라 한다/어디든 구석이 어울리는 나이/멀어지는 중심이 낯설지 않지만 왠지/오늘은 소주가 짜다(‘소주가 짠 날’ 중)‘

김 시인은 “현대는 서정시가 서정적 자아로만 머물 수 없는 현실이며, 대상과의 일치를 노래하는 것이 서정시의 근간이던 시대도 갔다”며 “서정적 자아가 현실을 외면한다면 서정시는 낡은 ‘라떼’ 시가 되고 만다. 전통적 서정시의 틀을 유지하면서 참여적 시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시집을 발표한 소회를 밝혔다. 그는 “시와 삶이 함께 갈 수 있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시와 시 밖의 풍경이 유리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경계하며 글을 쓰고 있다. 시 속으로 사람이 들어가기보다는 사람 속으로 시가 걸어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시집에 관해 대화를 나눌 때 그는 시 작품 ‘천지 말간 얼굴에 동백꽃물 풀어’로 제주 4·3 평화재단이 주관하는 제9회 제주 4·3 평화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려줬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