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시장
                                        배옥주

　오직 깡 하나로 버텨온 깡통시장
　아홉 개에서
　열 개가 가짜인 골목을 들추면
　빈 깡통소리 요란하다

　내가 아닌 내가 되는 사람들이
　난전마다 펼쳐진 신기루를 둘러본다

　바다와 대륙을 건너온
　팬디, 샤넬, 알마니가
　가짜일수록 진짜 같은
　가면을 덮어쓰고 있다
　진열대 뒤에 눈빛을 숨기고
　앞다퉈 앉아 있는 짝퉁들
　지나가는 발목을 붙잡는다

　한 시절을 건너가야 한다면
　여기선 깡통이 깡통을 견뎌야 한다
                                                              　 시집 ‘오후의 지퍼들’에서

	1991년 깡통시장의 모습

<내 느낌으로 바라보기>
‘깡통시장’.
　이름만 들어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재미있는 명칭이다. 국제시장과 근접한 깡통시장은 오랜 시간과 함께 이름 변천사를 거쳐왔다.

　과거에도 부평동 일대에 장이 열리던 곳이었으며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이후 일본인의 거주가 시작되면서 장 보는 일본인이 많아졌다. 1909년 ‘한일시장’이라는 사설시장이 개설됐으며 1914년 일제가 정한 시장규칙에 따라 공설시장으로 재개장하면서 ‘부평정시장’으로 바뀌었다. 이후 1920년 국내최초 공설시장이 되었다.

　그 뒤 해방이 되어 일본이 물러가자 ‘부평시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국전쟁으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을 취급하면서부터 장세를 키웠다. 70년대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 식량을 비롯해 다양한 군수품과 미군 물자인 통조림 등을 많이 쌓아놓고 팔았는데 이러한 이유로 ‘깡통시장’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것이다. 현재는 부평시장과 깡통시장이 합쳐진 ‘부평깡통시장’이다.

　시장은 인간 삶 그 자체이기에 생생한 현장 재미는 다양하다. 볼거리와 먹거리가 주는 매력이 으뜸일 것이다. 역사의 흔적처럼 일본 물건과 미국 등에서 들여온 수입 과자 그리고 양담배와 양주 등 화장품과 인테리어 소품까지 이국 물건이 다양했기에 발 디딜 틈이 없던 곳이다. 1990년대 들면서 수입 개방으로 외국 제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자 쇠퇴기에 접어든다.

　깡통시장 전성기는 ‘내가 아닌 내가 되는 사람들’로 붐볐던 오래전 일 같다. 삶이 고단하고 궁핍했던 시절이라 선진국에서 ‘바다와 대륙을 건너온’ 물건은 ‘난전마다 펼쳐진 신기루’였고 신기하고 색다른 세상에 마음을 홀리곤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원래 ‘진짜 같은’ ‘가짜일수록’ 더욱 화려하고 그럴 듯하여 진짜 프로가 아니면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의 대상은 경쟁력이 있어야 가치가 높아지게 마련이다. 명품을 좇는 욕망은 시들지 않아서 이 시대에는 기천을 호가하는 명품조차 백화점 매장 앞에 줄을 서야 하는 시절이니 그 시절의 ‘짝퉁’들은 ‘빈 깡통’이라는 연막전술을 깔고 있어 인간적이며 이 시대 명품과는 차원이 다르긴 하다.

　‘아홉 개에서 열 개가 가짜인’ ‘골목을 들추’면 요란할 것 같았던 깡통 소리는 생존경쟁과 다름없는 외침이었을 것이다. ‘오직 깡 하나로’ ‘깡통이 깡통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이 ‘건너’간 ‘한 시절’, 어떤 분야건 과도기를 건너기 마련이다. 부평깡통시장은 비빔당면과 유부전골이 추억의 먹거리로 특별한 곳이다.

　재도약을 꿈꾸며 2013년 부평깡통야시장을 열었다. 우리나라 최초 야시장이다. 인도네시아 국수, 베트남 만두, 중국 냉면 등 세계 각 나라 다양한 먹거리와 재미를 맛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시대가 변천한 현대에 ‘가면을 덮어쓰고’ ‘눈빛을 숨’긴 ‘짝퉁들’은 물건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빈 깡통소리 요란하다’ 해도 깡통은 요란해야 제 맛 아닌가.김곳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