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

　 - 문정영





　수만 번 엎드려야 바람을 이기는 화살은

　비로소 날아가야 할 공중을 겨냥한다

　바람과 천둥의 행간을 잡아당기는 몸짓이 활의 本인가

　깜박이는 정신의 변방을 향해 날아간다

　저 미끄러지는 주로를 따라 화살이 비상한다

　곤두박질하다 다시 제자리에서 귀가 열리는 나는

　아직 추락할 때가 아니다

　다시 아수라를 지날 것인가

　저 검은 몸을 놓고 계속 날아가고 싶다

　딱 한 번 눈썹을 밀고 공중에서 순해지고 싶다



　 시집 ‘<두 번째 농담>에서’

활주로 위로 비행기가 난다. 시인은 조용히 곱씹는다. “다시 아수라를 지날 것인가.” (시 본문 중) 비행기 뒷모습이 검다. 국제신문 DB

<내 느낌으로 바라보기>

바람을 이기고 과녁에 꽂히는 화살의 최후는 명중일 때 뜨거워진다.

비행장에서 비행기가 뜨거나 내릴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목표지점에 안착한 뒤에야 비로소 안정권에 들었다 할 수 있겠으나 그 어느 지점도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의 연장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이다. ‘수만 번’ 아니, 수만 번의 수만 번을 수도 없이 엎드린 뒤일 것인데 ‘바람을 이기는 화살은 비로소 날아가야 할 공중을 겨냥한다’는 빛을 발하는 이 행간이 출발점부터 허투루 걷는 흐트러짐을 곤두서게 한다.

‘코로나 19’사태로 한 해 연기됐던 제32회 도쿄올림픽이 지난 8월 8일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 메달 순위는 아쉬웠지만, 혼신을 다해 싸운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양궁 종목만큼은 이번 올림픽에서도 우수한 실력으로 온 국민에게 환희를 맛보였다. 남녀 단체전 메달 석권은 물론이요, 여자 개인전에서도 3관왕이 탄생했다. 양궁여자단체가 처음 도입된 1988년 ‘88올림픽’부터 지금껏 우승을 놓친 적 없으며 도쿄올림픽까지의 9연패라는 타이틀이야말로 눈부신 결실의 신화였다.

활의 근원이 ‘바람과 천둥의 행간을 잡아당기는 몸짓’이라는 시적 화자의 투시로 알 수 있듯 활을 다루는 선수도 활이 된 시인도 어떤 경지에 다다르기 이전에 행간마다 맞닥뜨리게 되는 수많은 ‘아수라’를 이겨내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과해야만 달성해야 할 목표지점인 과녁에 진입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어느 날의 현실은 ‘깜박이는 정신의 변방’을 날고 있고, ‘저 미끄러지는 주로를 비상’하다 ‘곤두박질하’지만, ‘다시 제자리에서 귀가 열리’기도 한다. 그래도 활은 활의 근원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로 ‘아직 추락할 때가 아니다’고 박차를 가해 본다.

활은 공중을 뚫고 날아가 과녁에 퍽하고 꽂힐 때 존재의미를 가지는 것인데…. ‘아수라’같은 인간세상이지만 ‘검은 몸은 놓고 계속 날아가고 싶’은 활의 마음이 공중을 날기 위해서는 순응해야 한다는데….

그 어떤 것도 거저 얻어지는 건 없다는 진리를 알기에 희망을 품은 이는 이 시간에도 활시위를 당길 것이다.김곳 시인